비구니사찰 공주 동학사 1박2일 출가기

  • 입력 2002년 5월 31일 18시 40분


동학사 부근 언덕에서 학업에 몰두하고 있는 비구니들사진제공=동학사
동학사 부근 언덕에서 학업에 몰두하고 있는 비구니들
사진제공=동학사
신라 성덕왕 때 계룡산에서 수도하던 당나라 상원조사와 호랑이에게 물려온 처녀가 의남매를 맺고 함께 구도의 길을 걸었다는, 남매탑의 전설로 유명한 충남 공주 동학사(東鶴寺·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지난달 27일 새벽 3시. 속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지만 천년고찰은 어김없이 눈을 떴다. 머리를 깍았지만 어린 티가 남아 있는 비구니(比丘尼·여승)가 어둑어둑한 대웅전 주변을 돌면서 염불을 한다. 가는 비가 뺨 위에 이슬처럼 내려앉는다.

전날 한 스님에게 출가한 이유를 묻자 “아직 중노릇 오래 안해서…. 그래도 이 길을 꼭 가야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살님(어머니) 뵌지도 오래됐다”고 했다.

혹 그 스님일까. 그렇다면 간밤에 이제는 보살님으로 부르는 어머니 꿈이라도 꿨을까. 그의 염불에는 자신이 먹물 옷을 입은 이유에 대한 대답이 들어있을지 모른다.

그의 염불 소리는 조금씩 높아진다. ‘도량석(道場釋)’이다. 낮은 염불로 진행되는 도량석에는 모든 생명이 놀라지 말고 서서히 깨어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범종각에 오른 네 비구니가 법고(法鼓) 목어(木魚) 범종(梵鐘) 운판(雲版)을 차례로 울린다. 이 소리들은 모든 중생이 번뇌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으로 법고는 축생(畜生)을, 목어는 수중 생명을, 범종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을 위한 것이다.

새벽 4시 아침 예불. 비구니들이 하나 둘 대웅전으로 향한다. 30여명에 이르지만 작은 속삭임도 없다. 빗소리만 들린다. 강주(講主·학장) 스님과 강사 스님, 어제 종무소에서 일면식을 익힌 스님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처사(處士·남성 신자)가 있어서는 안될 자리. 지난 밤 “여기가 어딘데 이 시간에 들어가느냐”는 동학사 아래 관리소 직원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떠올랐다. 주지 스님과 취재 약속이 있다는 종무소 확인을 받고서야 겨우 경내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동학사는 1956년 국내 최초로 세워진 비구니 전통강원으로 유명하다. 현재 이곳에는 전국의 사찰에서 모인 150여명이 학업과 함께 구도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정확하게 말하면 정식 승려가 아닌 ‘사미니(沙彌尼)’ 신분. 4년간 교육을 받으면서 348가지의 계를 지키겠다는 ‘구족계(具足戒)’를 받아야 비로소 비구니가 된다.

강원은 1개월의 ‘부처님 오신날 방학’을 맞아 20여명만이 지키고 있었다. 강원의 교육 과정은 막 행자 생활을 마친 신입생격인 ‘치문(緇門·1학년)’, ‘사집(四集·2학년)’, ‘사교(四敎·3학년)’, ‘대교(大敎·4학년)’ 반으로 나뉜다. 과거에는 10대 학생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거의 없고 20대 초중반이 가장 많다.

치문은 특히 스님을 상징하는 먹물 옷을 입는 의미를 배우는 기본 과정. 사교반으로 ‘고참’이 된 누구가는 “‘검게 물들일 치, 문 문’이 아니라 ‘합장 열심히할 치, 입산수도할문’”이라며 웃었다.

강의는 주입식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이뤄진다. ‘발기통’이란 게 있다. 이는 반 전체 학생의 번호표가 적힌 대나무 통. 강사 스님이 매번 발기통을 흔들어 ‘중강(강의를 할학생)’을 뽑으면 중강이 배울 내용을 외우고 의미를 해석한다.

종무소의 한 스님은 “이게 ‘신통방통 발기통’이라고 사찰 내 다른 소임 때문에 공부를 못한 스님만 족집게처럼 골라낸다”며 “강(講)을 제대로 못바치면 벌로 ‘채공(반찬 만드는 일)’ 소임을 받거나 책상을 들고 밖으로 쫓겨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육 과정이 엄격해 ‘야자(夜自·야간자율학습)’도 있다”는 게 한 스님의 귀띔이다. 원래 밤 9시가 사찰의 불을 끄는 시간이지만 도서관인 강설전에는 야자에 매달리는 스님이 많다고 한다.

강원은 대학의 기능도 있어 일반 학교와 비슷한 과정도 있다. 영어 일어 서예 등을 배우는 외과, 소풍격인 세차례의 산행, 가을의 체육대회, 서예 작품과 연극을 발표하는 ‘동향제’도 있다.

교지격인 ‘동학’지의 편집장인 성화 스님(대교반)의 말.

“저기 보이는 봉우리 있죠. 원래 이름은 시왕봉인 데 저희들은 ‘문필봉(文筆峰)’으로 불러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얘기인데 스님들이 열심히 공부하면 문필봉의 ‘북 바위’가 울린답니다. 이런 곳에서 공부 안하면 그게 ‘죄’죠.”

처사가 묵은 곳은 ‘단과료(旦過寮)’라는 객실. 아침이면 떠나가야만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서둘러 길을 나섰다.

동학사〓김갑식 기자 g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