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매력 주사' 보톡스…간단한 시술-즉각적 효과에 매력

  • 입력 2002년 5월 9일 14시 18분


보톡스 시술 전후 변화된 얼굴 모습
보톡스 시술 전후 변화된 얼굴 모습
보톡스 열광(craze), 보톡스 혁명(revolution), 보톡스 아가씨(babe), 보톡스 나라(nation)….

최근 미국 언론에는 ‘보톡스’를 활용한 신조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보톡스는 단순한 약물 이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보톡스는 비아그라 이래 최대의 신약으로 꼽힌다. 성형의 역사를 다시 쓸 정도의 혁명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작가 안나 퀸들렌이 미국 여자의 일생을 ‘아가씨 이전(pre-babe)’ ‘아가씨(babe)’ ‘아가씨 이후(post-babe)’ 3단계로 나눈 것에 빗대어 더 이상 ‘아가씨 이후’는 없으며 ‘보톡스 아가씨’가 있을 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보톡스가 사회에 가져온 변화. 그것은 나이듦을 거부하고 젊음에 집착하는 사회, 보톡스 나라의 건설이다.

미국성형수술협회에 따르면 2000년 시행된 성형 시술 가운데 보톡스 주사 요법이 19.1%를 차지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해마다 450만명 정도가 보톡스 주사를 맞는 것으로 추산된다. FDA는 4월15일 보톡스를 미용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식 승인했고 이것이 보톡스 열풍에 기름을 끼얹을 전망이다. 보톡스를 제조하는 앨러간사는 지난해 3억1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메릴린치 증권의 애널리스트 그레그 길버트는 FDA의 승인으로 앨러간사의 매출이 향후 2년 내 2001년의 4배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보톡스 열기는 한국에서도 뜨겁다. 보톡스의 판매대행사인 디엔컴퍼니에 따르면 보톡스가 본격적으로 성형 시술 목적으로 사용된 99년 이래 매년 50∼100%씩 매출이 성장했다. 99년 소비자가 지출한 보톡스 시술비는 120억원이었지만 2002년 말에는 7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표 참조).

▼국내 보톡스 시장 규모▼(단위 : 억원)

연도 1999 2000 2001 2002
매출 120 240 480 720

보톡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대한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국광식 공보이사는 “시술은 간단한 반면 효과는 크고 즉각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얼굴에 칼을 대지 않으니 회복 기간이 필요 없다. 영구적인 부작용도 아직까지 보고된 것이 없다. 국 이사는 “앞으로 성형 ‘외과’가 사라지고 약물로 외과적 수술 없이 성형할 수 있는 성형 ‘내과’가 생겨날 것이다. 보톡스는 첫 성형 내과적 시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자들은 기술이 수요를 창출했다는 성형외과 전문의들과 견해를 달리한다. ‘젊어 보임’이 주는 사회적 보상이 보톡스 열풍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남자들은 부인이나 파트너가 얼마나 젊고 매력적인가가 자신의 능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에 따라 남성들은 파트너에게 젊음을 요구하고 여성은 사회적 압력을 받아 젊어지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교수는 “여권신장에 따라 남성에게도 젊음을 요구하는 추세여서 남성 성형 인구도 더욱 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형 문화에 관한 논문을 준비중인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우경자씨는 새로움과 젊음에 대한 강박증은 기술 만능주의적 사고와 급변하는 사회의 반영이라고 주장했다. 학교나 기업에서 최고의 가치로 주목하는 것은 경험이나 지혜가 아니라 새로운 실험이고 창의성이다. 아이디어 하나로 백만장자가 될 수 있고 신기술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된다. 기술은 낡은 것을 갈아치우는 것이 본성이다. 이런 사회조류에서 경륜은 지혜가 아니라 버려야 할 쓰레기일 뿐이며 경륜의 외적 표식인 늙음도 감춰야할 요소가 된다.

보톡스에 열광하는 사회에 대해 누구보다도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을 파는 사람들 속에 있다. 마틴 스콜세즈 같은 미국 영화감독은 “보톡스 주사를 맞다보니 표정 연기가 제대로 되는 배우들이 없다”고 불평한다. 가수 겸 배우인 셰어처럼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이 젊어보이는 스타들은 많지만 보톡스 효과에 부가되는 근육마비 때문에 섬세한 표정 연기가 되는 배우 찾기는 점점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는 것.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모린 다우드는 ‘보톡스 경직’에 따른 또하나의 역설을 꼬집었다. “여자들은 지난 수년간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남자들에게 보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얼굴에 드러내라고 요구해 왔다. 그런데 이제 여자들이 자신들의 얼굴에서 감정을 지워버리고 있다.”

수원대 철학과 이주향 교수는 “꽃이 피는 것이 본성이라면 지는 것도 본성”이라며 “늙음의 미학을 모르는 사회가 어떻게 지혜를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혜남씨(신경정신과 원장)는 “사회 분위기가 젊고 활기찬 것, 감각과 이미지를 중시하다 보니 나이듦을 편안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나타나는 얼굴의 역사성을 잃어버리는 일조차 겁내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인류가 경륜을 지혜로 섬기고 얼굴의 역사성을 존중하는 날이 다시 올지는 불확실하다. 현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보톡스를 권하는 나라의 확실한 승자가 보톡스 제조회사와 의사들이라는 사실일 뿐이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허영심이 많아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허영스럽기 때문이다.” (낸시 에트코프 박사·하버드대 의대 정신분석의)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뉴욕타임스본사특약

●보톡스(Botox)

보톡스 약병

미국의 제약회사인 앨러간(Allergan)이 제조하는 제품명. 성분 이름은 보툴리눔이지만 보툴리눔 시장의 80∼90%를 보톡스가 차지하고 있어 일반명사로 쓰인다. 보툴리눔은 주로 상한 통조림에 발생하는 클로스트리디아 보툴리눔이라는 세균이 만든 독소를 말한다. 근육에 주사하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신경 전달물질을 차단시켜 근육을 일정기간 마비시킨다. 보툴리눔은 1895년 처음 발견됐으며 1991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보톡스를 눈 근육 경련 치료제로 사용하도록 승인했다. 피부과와 성형외과 의사들은 보톡스로 치료한 환자의 눈가에 주름살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주름살 제거에도 쓰기 시작했다. 올 4월 FDA는 보톡스를 미용 목적에도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승인함으로써 보톡스 열풍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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