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성형청춘'…세월의 때를 지워라

  • 입력 2002년 5월 9일 14시 13분


제주에서 화원을 하는 이지연 사장(41)은 최근 2박3일 일정으로 서울을 다녀갔다. 양재동 꽃시장을 둘러보고 서울에 온 일본 고객을 만나기 위한 비즈니스 출장이었지만 이 사장이 공항에 도착해 먼저 들른 곳은 명동의 한 성형외과였다.

5월은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이 몰려 있어 청바지와 캐주얼화를 벗을 여유가 없을 만큼 바쁘다. 하지만 이마와 양 미간에 잡히는 주름이 눈에 자꾸 거슬렸다. 일부터 하고 나면 병원에 들를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대기자가 많아 1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마와 미간 그리고 눈가의 주름을 펴는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제 약효가 발휘되는 2,3일 후면 이 사장을 성가시게 했던 주름은 감쪽같이 사라질 것이다.

이 사장은 제주시의 명동격인 연동에서 40평 규모의 화원인 ‘이지연 플라워 뱅크’를 운영하는 플로리스트다. 오전 9시반 출근하면 하루종일 꽃바구니나 화환을 만들어 직원에게 배달을 지시하고 꽃꽂이 강의도 한다. 솜씨가 좋아 호텔 방송사 면세점 여행사 등 단골이 꽤 많다. 번화가여서 밤늦도록 주문이 들어오기 때문에 문을 닫는 시간은 밤 12시나 다음날 새벽1시다.

매주 월 수 금요일에는 도매 시장으로 꽃을 고르러 간다. 모든 꽃은 서울에서 온다. 전화로 주문해도 되지만 이 사장은 싱싱한 꽃을 고르려고 항상 직접 간다. 꽃은 손이 많이 간다. 물을 수시로 갈아줘야 할 뿐만 아니라 날이 더워지면 쉽게 시들지 않도록 물에 표백제나 얼음도 넣어준다. 줄기가 가늘어 물을 빨아올리지 못하는 안개꽃은 끓는 물에 30초간 줄기를 담갔다 꺼낸다. 까탈스러운 꽃은 아예 3.5평 규모의 꽃 냉장고에 보관하기도 한다. 꽃에게 바람과 햇볕은 독약이다. 연약한 꽃송이는 고개를 푹 떨구고 바람과 볕을 피해보려 하지만 3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2년 전 이 사장도 거센 바람을 맞았다. 여행사를 경영하던 남편이 사업이 어려워질 즈음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의 넉넉한 벌이로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던 이 사장은 하루 아침에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그때까지 취미 삼아 운영하던 화원은 고교생인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수익을 내야하는 유일한 수입원이 됐다.

“취미 활동이 생계수단이 될 줄은 몰랐어요. 20대 초반에 꽃이 좋아서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한 5년쯤 배웠는데 꽃꽂이 선생님이 사범 자격증 시험을 보라고 자꾸 권하는 거예요. 살다 보면 무슨 일을 당하게 될 지 모르니 자격증이 있으면 든든할 거라고요. 저는 평생을 편하게 살 줄만 알았는데….”

남편을 떠나 보내고 거울 앞에 선 이 사장은 거울 속에서 바람 맞은 꽃을 보았다. 축 처진 눈매와 움푹 파인 볼, 지치고 탄력 잃은 피부, 그리고 텅 빈 마음. 유능한 여행사 사장이었던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자 바람은 차고 볕은 따가웠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절망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활기 잃은 얼굴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얼굴 성형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사장은 지난해 8월 얼굴을 맡길 의사를 찾아 서울 명동에 있는 30개에 가까운 성형외과를 샅샅이 훑었다. 의사들은 대개 “주름만 조금 펴 주면 별로 손댈 곳이 없다” “눈은 수술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이 사장은 답답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한 성형외과가 가장 믿음이 갔다. 이 사장은 큰 소리로 주문했다. “팽팽하게 펴 주세요.”

먼저 처진 눈을 팽팽하게 들어 올리는 수술에 들어갔다. 눈 주위에 마취 주사를 놓은 뒤 의사는 처진 눈꺼풀에서 지방을 3㏄ 정도 빼내고 늘어진 눈꺼풀을 잘라내 쌍꺼풀을 만들었다. 다음은 눈 아래쪽에 생긴 불룩한 지방 주머니. 아래 속눈썹 라인을 따라 절개한 뒤 지방을 2㏄ 가량 빼내고 늘어진 피부를 조금 잘라낸 뒤 팽팽히 당겨 꿰맸다. 눈수술에 소요된 시간은 2시간.

1시간이 지난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 배에서 지방을 빼내어 볼에 주입하는 수술이 이어졌다. 지방을 뽑아내는 작업은 너무 아프기 때문에 전신 마취가 필요했다. “하나 둘 셋 넷…” 열을 채 세기 전에 이 사장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수술은 재개됐다. 의사는 이 사장의 배꼽 가까운 곳에 주사 바늘을 찔러넣어 60㏄ 가량의 지방을 빼내 이 사장의 볼에 절반씩 주입했다. 홀쭉하던 볼이 부풀어올랐다. 수술 시간은 30분.

부기가 완전히 빠질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수술 결과에 만족했다. 결혼 전 쌍꺼풀 수술로 만들었던 서구적인 깊은 눈매를 되찾았고 눈가의 주름도 사라졌다. 볼에는 통통히 살이 올라 입가의 주름도 감쪽같이 없어졌다. 거울을 보아도 기분이 좋고 나들이길에 누군가 사진기를 들이대도 피하지 않게 됐다.

주위의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20대 초반 쌍꺼풀 수술을 받았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만든 거 아니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화원을 찾는 고객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지는 이유가 뭐냐” “꽃집의 아가씨는 이쁘군” “수술이 자연스럽게 잘 됐다”며 다시 봐주었다. “어디서 했느냐”며 이 사장을 따라 눈수술을 받으러 서울가는 고객들도 생겼다.

번화가인 연동에는 화원이 30여곳 된다. 이 사장의 화원 문 앞에 섰을 때 눈에 들어오는 주위 화원만도 7곳이다. 꽃꽂이 사범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플로리스트지만 경쟁이 만만치 않다.

“사실 실력으로는 연동에서 누구 못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몸빼 입고 주름 투성이의 얼굴로 있으면 실력이야 어떻든 고객들이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거예요.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젊게 보여야 좋아합니다. 젊었을 때 쌍꺼풀 수술 받을 땐 예쁘게 해달라고 주문을 했었지요. 요즘엔 ‘젊어 보이게 해주세요’ 하고 주문해요.”

이 사장은 청바지에 캐주얼화 차림으로 다닌다. 차도 남편이 몰던 포텐샤와 남편 생전에 자신이 몰던 엑센트를 팔아치우고 스포티한 은색 티뷰론 터뷸런스로 바꿨다. “엄마 같지 않다”며 처음엔 수술에 불만을 표시했던 아들(16)도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자랑스러워한다.

서울 출장을 무사히 마치고 화원으로 돌아간 이 사장은 2박 3일간의 공백을 활짝 핀 꽃에서 확인했다. 이 사장은 필 대로 다 피어 지는 일밖에 남지 않은 꽃을 보면 무척 속상하다. 팔지 못하고 재고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서둘러 도매시장으로 가서 새 꽃을 사들였다. 새 꽃이 들어와 화원 전체가 봉오리 진 싱싱한 꽃들로 물갈이가 될 때, 이 때가 이 사장이 가장 즐거운 때다. 여린 꽃봉오리들이 들어찬 냉장고를 들여다보면 부자가 된 느낌이다. 꽃꽂이나 포장 기술도 중요하지만 우선 꽃이 싱싱해야 한다. 사람들은 예쁘고 싱싱한 꽃을 원한다.

몇 달 후 보톡스 약물 효과가 사라져 잔주름이 보일 즈음 이 사장은 다시 서울 명동을 찾을 것이다.

▼몇년을 젊게 만드는 5분수술 장면

4월 29일 오후 6시반 서울 중구 명동1가 이강원 성형외과 원장실. 지루한 대기 끝에 이지연 사장이 상담용 의자에 앉았다.

“선생님, 저 이마하고 미간 펴 주세요.”

“봅시다…. 눈가는 안 하실 거예요?”

“나이가 40이 넘었는데 너무 주름이 없어도…. 알아서 해 주세요.”

“그럼 화장 지우고 오세요.”

화장을 닦고 돌아온 이 사장에게 원장이 주문했다.

“자, 찡그려 보세요.”

이 사장은 미간 주름을 보여 주기 위해 눈살을 찌푸려보고, 눈을 치켜떠서 이마의 주름을 만들었다. 눈가 주름을 확실히 보여주는 방법은 웃는 것. 의사는 이 사장이 표정을 바꿀 때마다 주름을 만드는 근육을 찾아내 마킹펜으로 검정색 점을 찍었다. 이마에 6곳, 미간에 2곳, 눈꼬리에 6곳씩 모두 14곳이었다.

보톡스 주사 시술은 수술실로 갈 것도 없이 원장실 옆에 딸린 처치실에서 이뤄졌다. 간호사의 보조도 필요치 않았다. 이 원장이 직접 흰색 보톡스가 들어있는 병에 생리 식염수를 넣고 희석시켜 이중 3분의 1쯤을 빼내 미리 찍어둔 점에 주사했다. 기자가 육안으로 보기에도 주름진 부위가 곧바로 펴졌다. 하지만 시술 직후의 팽팽함은 보톡스와 함께 투입된 식염수 때문이다. 2,3일쯤 후에야 마침내 보톡스의 약효가 나타나 일주일째 최고조에 이른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효과는 대개 6개월쯤 되면 사라진다.

진료실에 들어가기까지 대기시간 1시간. 그러나 상담부터 시술을 마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15분에 불과했다. 그나마 실제 시술에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사장은 처치실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화장을 한 후 병원을 떠났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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