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한 판에 평균 7500원… “할인시간 마트로 오픈런”

  • 동아일보

[위클리 리포트] ‘에그플레이션’에 밥상 물가 비상
고병원성 AI로 산란계 살처분… 가격 치솟아
정부, 신선란 수입하고 ‘1500원 할인’ 지원책
여름 폭염-수입 사료 원료 등 변수 될 수도
전문가 “실거래가-재고 정보 투명하게 공개… 예방 중심 방역체계 갖춰 생산 공백 줄여야”


⟪치솟는 달걀값… “폭염에 더 오를 수도”

수개월째 7000원을 웃도는 달걀 한 판 가격이 일부 마트에서 9000원까지 올랐다. 폭염이 시작되면 달걀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밥상 단골 메뉴인 달걀값이 오르면서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고 있다.⟫

4월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태국산 신선란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동아일보DB
4월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태국산 신선란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동아일보DB
충북 청주시에 사는 주부 임춘빈 씨(60)는 최근 달걀 한 판(30구)을 1500원 할인해 주는 행사가 시작되는 오전 10시에 맞춰 대형마트를 찾았다.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걀 판매대로 향하는 이른바 ‘오픈런’에 나섰다. 평소보다 저렴한 행사 상품은 물량이 한정돼 조금만 늦어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 씨는 “달걀값이 많이 올라 반찬을 줄여야 하나 걱정된다”며 “행사 시작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달걀이 진열대에 몇 판 남지 않아 서둘러 집어야 했다”고 말했다.

달걀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산란계가 대거 살처분돼 알을 낳을 닭이 부족한 이유가 크다. 정부는 신선란 수입, 대형마트 할인 지원 등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달걀값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 달걀 한 판 7500원 육박… 2월 이후 상승세

자료: 축산물품질평가원
자료: 축산물품질평가원
19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이달 1∼17일 특란 30구의 전국 평균 소비자 가격은 7492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6880원과 비교하면 반년 만에 8.9% 올랐다.

달걀 한 판 가격은 지난해 8월 7088원까지 오른 뒤 할인 지원과 생산량 회복 등의 영향으로 같은 해 11월 6499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겨울철 AI가 확산하면서 다시 올라 올해 5월 7404원으로 상승했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접하는 가격은 더 비싸다. 할인 상품을 제외한 일반 달걀은 일부 동네 마트와 슈퍼에서 한 판에 9000원을 넘거나 1만 원 이상에 팔리고 있다. 일부 대형마트는 정부 지원을 받아 달걀을 6000원대에 내놓으면서 구매 수량을 1인당 한 판으로 제한했다. 온라인에서는 할인 상품이 일시적으로 동나기도 했다.

자영업자 부담은 커지고 있다. 세종시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김미현(가명·43) 씨는 “김밥과 계란말이 등 주요 메뉴에 달걀이 많이 들어가지만 가격이 올라도 사용량을 줄이기 어렵다”며 “다른 식자재 가격까지 올라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달걀값 상승이 장기화하면 김밥과 빵, 과자 등 외식·가공식품 가격의 상승 압력도 커질 수 있다.

● 고병원성 AI 유행에 생산 감소… 폭염도 변수

고병원성 AI 유행에 따른 생산 감소가 달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AI 확산을 막기 위해 농장들이 산란계를 살처분하면서 달걀 공급이 줄어든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겨울철 AI로 살처분된 산란계는 약 1134만 마리로, 전체 사육 마릿수의 약 14%에 해당한다. 지난달 하루 평균 달걀 생산량은 4579만 개로 1년 전보다 3.6% 감소했다.

살처분이 끝나더라도 공급이 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산란계 병아리가 자라 안정적으로 달걀을 생산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AI가 발생한 농장도 방역 절차와 시설 정비를 마친 뒤에야 닭을 다시 들일 수 있어 생산 공백이 길어질 수 있다. 올해 1∼4월 산란계 병아리 입식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4% 늘었지만, 이 병아리들이 실제 알을 낳을 수 있는 닭으로 자랄 때까진 시간이 필요하다.

여름 폭염도 변수다. 닭은 더위에 약하다. 기온이 크게 오르면 사료 섭취량이 줄고 알을 덜 낳는다. 농가는 냉방과 환기 설비를 가동해야 해 전기료와 관리비 부담이 커진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7, 8월까지 생산량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으면 달걀값은 더 오를 수 있다.

환율이 상승하고 사료비가 오르면서 달걀값은 더 비싸질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 양계농가는 옥수수와 콩깻묵 등 사료 원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한다. 그러다 보니 환율에 민감하다. 국제 곡물 가격과 해상 운임이 올라도 사료값이 비싸져 농가 생산비가 늘어난다.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생산비까지 오르면 농가가 출하 가격을 낮추기 어려워진다.

산란계 사육 면적 기준 강화도 공급 늘리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산란계 한 마리당 사육 면적을 기존 0.05m²에서 0.075m²로 넓힌 기준을 2027년 9월부터 시행한다. 현재는 농가의 자율적인 시설 개선을 유도하고 있다. 기준이 시행되면 같은 시설에서 기를 수 있는 닭이 줄어드는 만큼 생산 기반 확충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생산자단체가 산지 가격을 정해 알리던 관행도 논란이 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산란계협회가 2023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지역과 달걀 크기별 기준가격을 정해 회원 농가에 통지해 가격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해 과징금 5억9400만 원을 부과했다. 다만, 협회는 가격 발표를 중단한 이후에도 달걀값이 오른 것은 AI에 따른 공급 감소가 원인이라고 반박한다.

● 신선란 3123만 개 수입… 한 판 1500원 할인

정부는 달걀 공급을 늘리고 소비자 부담을 낮추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농식품부는 미국, 태국에 이어 브라질로까지 수입국을 넓혀 올해 1∼7월 신선란 3123만 개를 들여올 계획이다. 지난달 수입한 미국산 신선란 224만 개는 홈플러스와 GS더프레시, 지역 중소마트 등에서 30구당 5990원에 판매됐다.

다만 3123만 개는 국내 하루 생산량의 약 70%에 해당한다. 수개월에 걸쳐 들여오는 전체 물량은 국내 생산량의 하루치에도 못 미친다. 국내 전체 수급을 바꿀 정도의 효과를 내긴 힘들다.

정부는 다음 달 1일까지 대형마트 등에서 특란 30구를 살 때 제공하는 할인액을 기존 1000원에서 1500원으로 높였다. 농협도 하나로마트에 공급하는 달걀 납품단가를 낮추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제과·제빵업체 등이 사용하는 달걀 가공품 8000t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수입 비용을 낮출 방침이다.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는 달걀 거래 관행도 개선하기로 했다. 농가와 유통업체가 가격과 규격, 계약 기간 등을 미리 정하는 표준거래계약서 도입을 추진하고, 산지 가격 조사와 발표는 축산물품질평가원으로 일원화할 계획이다. 생산자단체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달걀 산업 발전 협의체를 운영해 재고와 수급 전망을 공개하고, 현재 4곳인 온라인 도매 거래 공판장을 2030년까지 10곳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달걀 가격이 낮을 때 액란 등 달걀 가공품으로 만들어 민간 냉동시설에 보관한 뒤 AI 등으로 가격이 급등하면 시장에 공급하는 비축 사업도 검토한다. 신선란은 보관 기간이 짧지만 액란이나 분말로 만들면 비교적 오래 저장할 수 있어 제과·제빵용 수요를 대체할 수 있다. 특히, 병아리 입식을 늘리는 동시에 달걀을 여름철 중점 관리 품목으로 정해 생산량과 산지·소매 가격을 점검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병아리가 본격적으로 달걀을 낳는 7월 이후 생산량이 지난해 수준을 회복하면서 가격도 점차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이 더 오르거나 공급 차질이 커지면 추가 할인과 수입 확대도 검토할 방침이다.

● “유통 투명성 높이고 AI 방역 강화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 전망대로 가격이 내려갈지는 불확실하다. 지난해에도 병아리 입식 증가로 가을부터 생산량이 회복됐지만 겨울철 AI가 다시 확산하면서 가격 안정 흐름이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올해도 폭염이나 추가 가축 질병이 생기면 가격이 안정되는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할인하더라도 공급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으면 나중에 가격이 다시 오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수입과 할인은 단기 대책인 만큼 유통 구조와 방역 체계를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표준거래계약서 도입과 온라인 공판장 확대 등 정부 대책이 실제 거래 관행을 바꾸려면 이행 상황을 지속해서 점검하고, 올해 겨울철 AI 방역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원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위원은 “농가와 유통업체가 가격과 규격, 계약 기간 등을 미리 정하는 표준계약서가 제대로 작성되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온라인 공판장 거래를 늘려 실제 거래 가격과 재고·수급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대 교수는 “고병원성 AI로 인한 생산 공백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 중심의 방역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철새를 통한 바이러스 유입 위험에 대한 예찰을 강화하고 밀집 사육 지역의 시설 개선과 농장 분산 등을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황성철 농식품부 조류인플루엔자 방역과장은 “겨울철 농장 출입 차량과 인력에 대한 소독과 통제를 강화할 계획”이라며 “대규모 산란계 밀집단지를 중심으로 질병이 확산한 사례가 있었던 만큼 올겨울에는 이를 막기 위한 강화된 방역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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