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3000억 국책사업 디지털위성방송 겉돈다

  • 입력 2002년 3월 4일 18시 43분


《뉴미디어 시대의 본격 개막을 표방하며 1일 출범한 국내 최초의 디지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가 방송 초기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특히 위성 방송 시청에 필수적인 수신기 보급이 생산 차질로 4일 현재 7000여대(예약 가입자는 50여만 가구)에 그친데다, 일반 가구에는 거의 보급되고 있지 않아 방송 초기 연착륙에 난항을 겪을 조짐이다.》

수신기는 이달말경 12만 가구, 5월 중순 30만 가구에 설치될 것이라는 게 ‘스카이라이프’측의 전망. 이에대해 박모씨(서울 송파구 방이동)는 3일 본사로 전화를 걸어 “엔진을 만들어놓지도 않고 자동차를 출시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또 ‘시민방송’ 등 개국 초기 일부 채널이 차질을 빚는 데다 74개 TV 채널 중 ‘스카이라이프’에서만 방영하는 채널이 22개에 불과해 3000억원이 들어간 ‘국책사업’인 위성방송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 엔진없는 자동차

스카이라이프의 가장 큰 문제는 수신기 부족으로 일반 시청자가 방송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 이 때문에 수신기를 보급받지 못한 수많은 예약 가입자들은 스카이라이프 인터넷 홈페이지(www.skylife.co.kr) 등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ID ‘k15281’인 시청자는 “제대로 해놓은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방송을 시작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게다가 가정에 수신기를 설치한 시청자들은 “수신기가 기초적인 기능만 갖고 있어 디지털위성방송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수신기 자체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ID ‘kpch1427’ ‘eosmuse’ 등의 시청자는 “디지털 장비에 기본인 S-vhs 단자가 없고 10여년전 사용된 RCA 단자만 제공해 DVD급 화질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4일간 방송된 ‘스카이라이프’는 일본의 NHK 위성방송에 비해 화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신기 뒷면에 있는 s/pdif (디지털음성출력)단자에도 문제가 있어 오디오 장비를 통한 고음질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스카이라이프 강현두 사장은 “이르면 8월 중순 이후 이런 기능이 추가된 고급형 수신기를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약한 콘텐츠

스카이라이프의 74개 TV 채널 중 위성방송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22개 뿐. 나머지는 현재 케이블 TV에서도 방송 중인 프로그램으로 이는 콘텐츠의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개국 첫날인 1일부터 ‘시민방송’ ‘디즈니채널’이 준비 부족으로 제대로 방송되지 않았다.

그러나 플랫폼 사업자(송출자) 특성상 ‘스카이라이프’가 프로그램 공급업체(PP)들의 프로그램 제작에 사실상 간여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스카이라이프측은 “프로그램 제작 방향이나 질은 대부분 PP에 달려 있어 ‘신의 성실의 원칙’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

방송가와 학계에서는 “스카이라이프가 지난 수년간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고전한 케이블 TV처럼 ‘빛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현실적인 마케팅과 긴축 경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국내 방송 시장과 시청 행태가 여전히 지상파 3사 중심인 탓으로 1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대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대 김승수(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스카이라이프가 수신 장비 구입비의 58%가량을 지원해주고 TV 광고 등에 100억원을 쏟는 등 출범 초부터 일반 시청자를 잡으려고 무리했다”며 “지금이라도 초기 미국 위성방송처럼 호텔 공공기관 등 일반 시청자에 비해 위성방송을 필요로 하는 시장부터 집중 개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케이블 지역방송국(SO)의 사장은 “스카이라이프는 가전업체와 정보통신부의 정치 논리에 밀려 본방송을 서두른 측면이 많다”며 “지금이라도 철저히 시장 논리에 따라야한다”고 말했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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