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원로가수 원방현씨]희망을 노래한 가요계 신사

  • 입력 2001년 12월 17일 18시 02분


타계한 원로가수 원방현(元芳鉉·본명 원구현·元九鉉·사진)씨는 1950, 60년대 가수로서 전성기를 누리며 ‘가요계의 신사’로 불렸다.

그가 가수 생활을 하면서 불렀던 가사들은 대부분 건전 가요를 연상시키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이었다. 가사 내용이 슬프거나 퇴폐적인 내용은 처음부터 레코드를 취입하지 않았다고 가요계 후배들은 전한다. ‘꽃중의 꽃 무궁화꽃 삼천만의 가슴에…’로 시작되는 ‘꽃중의 꽃’(1956년 발표)이 그 대표곡.

그의 성격도 맺고 끊는 게 분명한 깔끔한 성격으로 평소 선 후배를 잘 챙기는 활달한 리더십으로 가요계의 존경을 받았다.

87년 고인의 가수생활 40주년 기념 음반 ‘내가 넘는 인생길’을 함께 제작했던 작사가 김지평씨는 “데뷔 40주년 음반을 만들면서도 가사 내용이 퇴폐적이면 음반 목록에서 빼버렸고 가사가 깨끗하면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1947년 서울중앙방송국 전속 가수로 데뷔한 그의 취입곡은 150여곡으로 ‘봉덕사 종소리’ ‘달려라 청춘마차’ ‘OK 목장’ ‘동백꽃 일기’ ‘남국의 화원’ 등이 있다.

그가 데뷔한 해방 직후는 사회적으로 민족 의식이 강조됐던 시절. 고인이 건전가요 풍의 노래를 많이 취입한 것은 이같은 사회 분위기 탓도 있다는 분석이다.

고인은 통신대 무선과를 졸업하고 체신부(44∼48년)에 근무하던 시절 가수가 됐으며 이후 공군정보국(50년)을 거쳐 합동통신 동양통신 치안본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1961년 5.16 이후 전업 가수로 나섰다.

고인은 원로 작사가 반야월 옹(84)과 함께 대한레코드작가협회의 이름을 내걸고 전국을 순회하며 신인 가요제를 개최해 역량있는 후배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그는 병에 시달리던 얼마전까지도 불우 이웃을 위한 행사에 자주 참가했으며 “노래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게 최고의 보람”이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반야월 옹(84)은 고인에 대해 “까다로운 성품만큼이나 인정이 많았던 분”이라며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대단했다”고 술회했다.

<허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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