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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12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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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질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새물결)과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이학사). 6월말에 나온 ‘천개의 고원’은 내용이 어려운데다 4만원이나 되는 가격 등 ‘안 팔리는 책’의 조건을 두루 갖췄음에도 서점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출간 2달만에 초판 2000부가 매진되어 재판을 내놓았다.
지난달 중순 나온 ‘제국’도 비슷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측은 거의 매일 100권 이상의 주문을 받고 있다.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면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출판사로는 ‘이학사’ ‘새물결’ ‘태학사’ ‘이산’ ‘책세상’ ‘이후’ ‘일빛’ 등이 있다. 이들은 오히려 다른 일반 출판사들보다도 안정적인 매출 신장을 보이는 추세.
‘새물결’ ‘이학사’ ‘이후’ 등이 묵직한 책들을 꾸준히 펴내는 데 승부를 걸고 있다면 ‘태학사’와 ‘책세상’은 새로운 기획을 통해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1970년대 말부터 국문학과 국사학 분야의 학술서들을 출간해 온 ‘태학사’는 최근 동양의 고전산문 중 대중성이 있는 글을 골라 ‘산문선’시리즈로 좋은 반응을 받고 있다. ‘책세상’은 소장 연구자들을 동원해 200쪽 내외의 ‘책세상문고’ 50여권을 발간해 출판계의 새로운 시도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산’처럼 한 분야를 특화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조너선 스펜서의 ‘칸의 제국’, 친후이(秦暉)의 ‘전원시와 광시곡’ 등 중국 관련 서적을 출판해 온 ‘이산’은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삼인’출판사의 이홍용 편집장은 “출판계내에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30, 40대 필자 편집자층이 형성되면서,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도정일 교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성껏 책을 내고자 하는 출판사와 책읽는 사회를 만들려 애써 온 일부 시민들의 노력 등이 인문과학 서적의 수요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명대 홍원식 교수(철학)는 “인문학 서적들이 계속 출판돼 도서관 등에 축적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면서 “그렇지 못할 경우 현재 일부 인문학 전문 출판사들이 쌓아놓은 기반은 물론, 전체적인 인문학 서적 시장이 붕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