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한할머니 추모비 제막 '길상사' 덕조스님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24분


‘요정 정치’ 시절 권력자들의 밤놀이 무대였던 대원각을 청정도량 길상사로 기증한 고(故) 김영한 할머니가 남긴 ‘무소유’의 마음을 기리는 작은 추모비 제막식이 21일 오전 10시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서 열린다.

비석은 높이 1m도 되지 않는 자그마한 육면체 돌 위에 알 같기도 하고, 큰 그릇 두 개를 맞대놓은 것 같기도 한 둥그스름한 돌을 조각해놓은 것이다. 길상사 신자인 조각가 배삼식씨가 대가 없이 깎은 것이다.

원래 할머니는 유언을 통해 특별히 비석 같은 것을 세워 달라고 말한 바 없다. 이번에 비석이 세워지는 것은 길상사에 고인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한 신자들의 뜻에 따른 것이다.

할머니는 99년 11월 13일 숨지기 전날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길상사를 마지막으로 찾아왔다. 그날 할머니는 법정 스님의 제자인 덕조 스님 등에게 유언을 하며 “나를 화장해 첫눈 오는 날 경내에 뿌려 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길상사의 절 살림을 맡고 있는 주지 덕조 스님은 “할머니가 임종하셨던 순간까지 손에 쥐고 계셨던 단주 등 모든 것이 화장됐다”고 말했다.

화장된 유골은 길상사에 보관돼오다 그해 첫눈 오는 날 지금 ‘길상헌’이라고 이름 붙여진 요사채 주변에 뿌려졌다.

이번에 세워지는 비석도 길상헌에서 가까운 양지바른 곳. 비석 뒤에는 잔디 언덕이 조성됐으며 앞에는 작은 물줄기가 흘러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본뜬 셈이다.

덕조 스님은 “물줄기 건너에 비석이 마련돼있어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요단강 건너에 비석이 서 있는 셈”이라며 “첫눈이 내리면 다시 할머니 생각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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