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문화재 '장물세탁' 밀매단 적발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29분


서울지검 형사7부(이한성·李翰成 부장검사)는 24일 해인사 중건 발원문 등 국보급 문화재를 훔치거나 밀매한 혐의로 전 고미술협회장 공모씨(53)와 전북 완주군 모 사찰 주지 한모씨(46) 등 24명을 구속하고 골동품상 황모씨(40) 등 12명을 불구속입건 또는 수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인사 등 전국 사찰과 서원 영정각 등에서 훔친 용비어천가 진본(순치본), 능엄경 언해본 등 국보급 문화재와 불경 등 1000여점을 점당 수백만∼수천만원씩 받고 판 혐의다.

▽절도 밀매 수법〓검찰은 추모씨(61·구속기소) 등 문화재 전문 절도범들이 주로 신도를 가장해 불당에 들어가 불상의 등이나 밑에 있는 뚜껑을 열고 불경 고문서 탱화 등을 닥치는 대로 훔쳤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찰측이 ‘불경(不敬)을 저지르면 안된다’는 이유로 불상 내부 유물에 손을 대지 않는 등 관리가 허술한 점을 노렸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수사결과 전북 완주군의 모 사찰에 있는 5∼6m 높이의 대형 불상 내부의 유물을 턴 절도범은 2∼3일치 식량을 갖고 불상 내부로 들어가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밖에서 대기하던 공범에게 유물을 넘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도난당한 유물들은 주로 골동품상 등을 통해 일부 지역 고미술협회 관계자와 화랑 운영자에게 팔려나갔다.

특히 지난해 1월 충남 논산시 익안대군(조선 태조의 셋째 아들) 영정각에서 도난당한 익안대군 영정(충남 지방지정문화재 329호)의 경우 일본으로 밀반출한 뒤 그곳에서 정상적인 유통절차를 거친 것으로 위장해 같은 해 7월 김해세관을 통해 국내에 들여오는 등 일부 유물은 ‘장물세탁’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 영정은 ‘일본에서 되찾은 우리 문화재’로 알려져 시중에 유통됐는데 거래가격이 8000만∼1억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밀매된 주요 문화재〓이들에게서 압수한 해인사 중건 발원문은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각 법조전 불상 안에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해인사의 중건 과정이 명주 위에 붉은색 글씨로 적혀 있는 국보급 문화재. 발원문에는 조선 성종 21년(1490년)에 작성한 학조대사의 발문(跋文)과 중건을 위해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있다고 검찰은 전했다.

또 용비어천가 진본(순치본) 7권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 선조때 간행된 50질(1질 10권) 중 일부로 현재 국내에 7질만 남아 있는 보물급 문화재다.

이밖에 서울 봉원사에서 도난당했던 능엄경 언해본(조선 세조 간행) 10권 중 3권과 조선 세종 30년(1448년)에 작성한 안평대군의 발문이 있는 불경 묘법연화경 등도 이들이 밀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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