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눈길 등정]한라의 정기로 새봄 충전

  • 입력 2001년 2월 14일 19시 14분


오전 6시반 한라산국립공원 성판악 사무소(제주 북제주군 조천읍) 앞.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도 주차장은 전세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등산객들로 붐빈다. 대부분 뭍에서 건너온 원정 등반객들. 이중에는 3월 1일부터는 봄∼가을 백록담에 오를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내려온 사람도 꽤 많다. 아이젠을 부착하고 서둘러 산을 오르는 이들의 뒤를 쫓아 장장 19.2㎞(왕복·보통 9시간 소요)의 백록담 등반길에 올랐다.

매표소를 지나 등산로에 들어서니 초입부터 눈밭이다. 해발고도는 750m. 용평리조트의 스키장 베이스와 같은 높이다. 겨울등반의 묘미는 역시 눈길 산행. 한라산에는 2월말까지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려 언제 올라도 흰 눈 수북한 숲에서 산행을 즐긴다. 아이젠을 끼고 눈길을 걷는 기분은 좀 색다르다. 평소 같으면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눈길도 또박또박 걸어서 오를 수 있으니 말이다. 등산객중에는 단화에 조그만 아이젠을 붙인 채 정상에 오른 ‘겁없는 처자’도 보인다. 아이젠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온 학생도 많았다. 마침 날씨가 좋기에 망정이지 눈보라 몰아치는 악천후로 변하기라도 하면 어쩌려는지….

매표소∼사라대피소에는 눈 속에서도 푸른 잎을 보여주는 제주 조릿대(산죽의 일종)가 즐비하다. 늘 푸른 굴거리나무(활엽), ‘살아 천 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한라산 어디서고 볼 수 있는 늘씬한 삼나무(침엽)도 숲을 이루고 있다. 숲에 들어서면 주변을 살펴보는 여유도 갖자. 숲에는 고난의 상처가 성성하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가 부러진 나무뿐만이 아니다. 넘어지면서 아예 뿌리 채 뽑힌 나무의 주검도 보인다. 그런 참상속에서도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의연하게 자태를 뽐내는 나무도 많으니 산행 중에 예기치 않은 배움도 얻는다.

좁은 숲속 등반로에서는 앞서 다녀간 등반객이 밟고 지나가 다져진 발자국길로만 다녀야 하니 발걸음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5시간 이상을 꾸준히 올라야 하는 산행길이니 만큼 보폭은 작게, 걸음은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오르는 게 요령이다. 가끔 숲속 양지바른 눈밭에 앉아 쉬면서 초콜릿이며 귤이며 간식도 든다. 모처럼의 겨울 산행을 죽기 살기로 경주하듯 오르내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간간이 숲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도 듣고 까마귀떼가 날아가는 모습도 바라보고 눈 위에 선명한 야생동물의 발자국도 보면서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자. 그리고 걸어온 길도 뒤돌아보면서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장대하게 다가오는 한라산 아래의 제주도와 주변의 바다도 두루 살펴보자. 더불어 가끔은 내가 살아온 인생 길도 돌이켜보면서….

드디어 정상 아래 진달래밭 매점. 쉬엄쉬엄 올랐더니 3시간이나 걸렸다. 매점과 대피소, 그리고 간이 화장실이 전부다. 햇볕 따사로운 매점앞 양지쪽 눈밭에는 철퍼덕 앉은 채로 컵라면과 음료수로 원기를 보충하는 등반객들이 가득하다. 아래로는 푸른 바다가, 위로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자태를 드러낸 백록담 동릉이 시야를 메운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2.3㎞. 족히 2시간은 더 올라야 한다. 숲이 사라진 동릉 등반로에서는 산 위와 아래로 제주도의 멋진 풍경이 점입가경으로 펼쳐진다. 오르면서 그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감상하자. 그리고 심호흡으로 백록담 동릉으로 피어 오르는 씩씩한 한라의 정기를 가슴 깊이 담자. 정상으로 오르는 발길이 한결 가벼워진다.

△입장료〓1300원 △산행 허용 시간〓①매표소→정상(등산)/오전6∼9시 ②진달래밭매점→정상(등반)/정오까지 ③진달래밭 매점→매표소(하산)/오후1시반 이전 △식수〓샘물 없으니 별도 준비 △매점〓컵라면 1500원 △쓰레기 처리〓비닐봉투에 담아 하산 △준비물〓아이젠(필수) 햇빛차단크림 선글라스 모자 장갑 등 △사무소〓064―758―8164

제주도 전문 대장정여행사(www.djj.co.kr)는 렌터카 이용시 회원제 이색숙소인 해오름 리조트 객실을 무료 제공하고 항공료도 30% 할인해 주는 한라산 가족여행 패키지를 판매중. 2박3일 기준으로 ‘렌터카(3일)+해오름 리조트(2박)’가 23만4000원. 항공료는 1인당 10만5000원(성인 왕복). 대여 차량은 2000㏄ 레간자 신형 LPG 오토. 문의 02―3481―4242

summer@donga.com

◇3월부터 정상등반 전면통제◇

3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는 한라산 정상 등반이 전면 통제된다.이유는 백록담 정상부분의 심각한 훼손. 제주도 한라산국립공원 사무소측은 최근 정상 등반로 중 △진달래밭 매점∼정상(성판악 코스) △용진각∼정상(관음사 코스) 구간을 3월 1일부터 각각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기간은 2003년까지. 단, 적설기(12월 1일∼다음해 2월 28일)에는 정상 등반이 허용된다. 문의 제주도 한라산국립공원 사무소/064―742―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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