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달력과 권력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9시 43분


◇세월마저 지배하려 한 권력자들의 헛된 꿈

새해 달력을 구하느라 분주한 요즘이다. 매년 바뀌는 달력. 달력을 하나만 만들어 평생사용할 수는 없을까, 매년 새로 찍어내는데 들어가는 아까운 종이를 절약할 수는 없을까?

1849년 프랑스의 실증주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한달을 정확하게 28일로 하고 13개월짜리 달력을 만들자는 것이었다(28일이 13개월이면 364일이 된다). 그러면 매월 1일은 언제나 일요일이 되고 28일은 토요일이 된다.

매월 같은 날짜는 같은 요일로 고정되니 한 달짜리 달력 한 장으로 영구히 사용할 수 있다. 이를 지지하는 천문학자들은 1942년 ‘국제고정달력동맹’을 만들어 13개월짜리 달력으로 바꾸자는 운동을 펴기도 했다.

이들은 365일에서 남는 하루는 요일을 정하지 말고 12월28일과 1월1일 사이에 배치하자는 견해를 덧붙였다. 그러나 매달 ‘13일의 금요일’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아이디어는 완벽한 영구달력을 만들고 싶어하는 인간 욕망의 발현이었다.

이 책엔 이같이 흥미진진한 달력 이야기가 가득하다. 기원전 6000년경 고대 이집트의 달력, 율리우스력, 그레고리우스력, 프랑스혁명 달력, 이탈리아 무솔리니 달력 등 달력의 장구한 역사는 물론이고 권력과 달력의 관계, 현대 달력의 허점 등 달력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저자는 독일 본대학 박사과정에서 생태유기화학을 전공하고 있는 30대의 과학도. 평소 역사문화에 관심이 많던 저자는 1999년초 어느날 우연히 달력에 관한 퀴즈를 풀다 달력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독일 곳곳의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뒤져 이 책을 쓰게 됐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달력과 권력의 관계다. 고대 로마의 달력은 1년 10개월, 날수로는 304일밖에 되지 않았다. 기원전 46년 로마 공화정 시기의 관리들은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고 싶은 생각으로, 달력을 관장하는 대제관들에게 뇌물을 먹여 한 해의 날수를 늘리곤 했다. 그렇게 늘어난 날은 무려 455일. 인류 역사상 가장 긴 한해였다.

이 혼란스러운 달력체계에 손을 댄 사람은 로마의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그는 기원전 45년, 365일 열두달짜리 율리우스력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역시 권력적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7월을 명명했고, 그것도 모자라 31일짜리 큰 달로 바꾸어버렸다.

이탈리아 무솔로니가 개인적 위업을 과시하기 위해 제정한 파쇼 달력, 스탈린이 경제적 목적에서 제정한 소비에트 달력도 불순한 동기에서 만들어진 달력들.

저자는 “달력이야말로 과학과 합리성의 산물이어야 하는데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비판한다. 어쨌든 달력의 역사는 과학과 권력간 갈등의 역사였다.

지금 사용하는 달력은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만든 그레고리우스력이다. 이 달력이 등장한 것은 그때까지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에 오차가 있었기 때문.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1년은 365.25일. 그러나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 즉 1년은 365.2422일이다.

율리우스력에는 매년 11분42초의 오차가 발생했고 그 오차는 계속 누적되어 16세기에 접어들어선 열흘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그레고리우스력 제정 당시 그 열흘의 오차를 없애기 위해 10월 4일의 다음날을 15일로 정했다. 열흘의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달력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18세기말 프랑스 혁명기엔 10진법에 기초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7일 일주일이 아닌 10일 일주일 단위의 달력을 만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7일에 하루씩 놀던 것이 10일에 한 번으로 준 데 대한 민중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과학도로서 저자의 안목도 돋보인다. 저자는 그레고리우스력 제정 당시, 율리우스력의 누적 오차는 정확하게 12.69일이었는데도 열흘만 없애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그 오류를 천문학적으로 바로 잡아보면 지금은 2000년이 아니라 1593년에서 1718년 사이의 어느 해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달력의 이면에 감춰진 과학과 권력의 갈등, 완벽한 달력에 도전

해온 인류의 역사. 그 미로찾기의 신선함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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