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학계 화제-쟁점]김용옥 TV강좌 '지식인 쇼' 논란

  • 입력 2000년 12월 27일 19시 15분


도올 김용옥(전 고려대 교수)은 새해 벽두부터 특유의 달변과 독설로 어려운 사상 강좌를 대중의 오락물로 만들었다. EBS 노자강의를 통해 사상 강좌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다시 KBS 논어강의까지 맡아 ‘인텔렉추얼 쇼’를 보여주고 있다.

김용옥의 TV 강의에 대해 ‘진짜 알맹이는 적고 조미료만 많이 탔다’ ‘학문적이라기보다 상식적인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을 뿐’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차피 대중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상사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사건으로 봐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사회과학계에서는 한양대 임지현(사학)교수 등이 쓴 ‘우리안의 파시즘’이 논쟁이 됐다. 지난해 계간 ‘당대비평’ 가을 겨울호에 두 차례에 걸쳐 실린 후 올 중반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 글은 이념적으로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보수성을 드러내는 지식인 사회의 단면을 잘 지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년 ‘당대비평’ 봄호에는 ‘우리안의 파시즘’을 둘러싼 올 한 해의 논쟁을 결산하는 좌담회가 실린다.

임교수의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해 전북대 강준만(신문방송학) 교수, 성공회대 김동춘(사회학) 교수 등은 파시즘이나 극우적 보수와 맞서 실천해야 할 과제가 많은 한국적 현실에서 일상적인 의식변화나 논하고 있는 임교수의 주장은 일종의 ‘진보 허무주의’ ‘민족 개량주의’라고 몰아부쳤다.

책세상문고·우리시대는 30∼40대의 젊은 학자들을 동원해 톡톡튀는 학술시리즈를 펴냈다. ‘한국의 정체성’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전자민주주의 시대는 오고 있는가’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 등과 같이 현실에 직접 와닿는 논쟁적인 주제를 택해 저변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책도 문고판 형식을 취해 읽는 이의 부담을 줄였다. 5월부터 시작해 12월 현재까지 27권을 출간했다. 현재 100권 정도가 준비되고 있다.

사학계에서는 거시사(巨視史)에서 미시사(微視史)로의 방향전환이 이론적 차원에서 모색됐다. 미시사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소수의 리더보다는 평범한 대중의 일상을 분석하는데 관심을 쏟는 역사방법. 한국교원대 조한욱 교수가 ‘역사가 달라진다’, 부산대 곽차섭 교수가 ‘미시사는 무엇인가’란 저서를 출간해 호응을 얻었다. 역사학회는 지난 여름 ‘지역사―미시사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심리학계에서는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교수들과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공동으로 30권짜리 이상심리학 시리즈를 출간해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시리즈는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섭식장애 성기능장애 주의력결핍 자폐증 알코올중독 등 현대인이 걸리기 쉬운 30가지 심리적 질병을 한 권에 하나씩 다뤘다. 200쪽 안팎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분량에 전문용어나 학술이론을 줄이고 쉬운 말로 일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간략하게 기술했다.

한편 6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학술교류가 큰 기대를 모았으나 진전이 없었다. 남북한 관련 논의는 주로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정세의 진로에 집중됐고, 그것도 학문적이라기보다 정치평론 수준에 머문 것이었다.

한국전쟁 50주년과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행사도 시들했다. 한국전쟁 50주년은 남북 화해 무드에 밀려 소홀히 취급된 감이 없지 않았고,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은 세태가 변하면서 관심 자체가 줄어드는 경향이 뚜렷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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