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美 명문대로 직접 간다”…고3우수생 '아이비리그' 응시늘어

  • 입력 2000년 12월 4일 18시 29분


“나는 아이비리그(Ivy League)로 간다.”

우수한 고교생들 가운데 국내 대학 대신에 미국 유명대학으로 진학하거나 진학을 희망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지난해 특수목적고 학생 한두명이 이렇게 진학해 화제가 된 뒤 올 들어 이런 경향이 일반고까지 확산돼 또 다른 진학유형으로 떠오른 것.

이는 특히 수년 전부터 문제가 된 ‘도피성 유학’이나 ‘조기 유학’과 달리 최상위권 성적에 학교 적응력도 높은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 ‘미국대학 직행’의 실태와 이 현상을 보는 시각 등을 알아본다.

▽특수 목적고의 열풍〓서울 대원외국어고 3학년이자 학생회 간부이기도 한 A군(19)은 지난달 15일 수능수험장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해외진학 프로그램(SAP)에 따라 3년간 미국대학 진학을 준비해 왔기 때문.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어 입학 이후 꾸준히 준비해 왔다”는 A군은 미국 수학능력시험 SAT1과 SAT2도 인터넷으로 치렀다.

98년 도입된 이 학교의 SAP는 특별활동 시간과 방과후의 자율학습 시간을 주로 이용한다. 프로그램 참가자는 3학년 13명, 2학년 26명, 1학년 42명 등으로 계속 느는 추세.

3학년생 중에 6명이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등의 특차에 응시해 이달 15일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고 나머지도 대부분 아이비리그 대학에 응시할 예정이다.

이 학교의 진학담당 조종상(趙鐘相)교사는 “SAP 참여희망 학생이 많아 시험을 거쳐 선발한다”며 “방과후 시간을 많이 이용하는 만큼 남들보다 2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강원 횡성군의 민족사관고는 아예 입학 때 해외진학반을 따로 선발한다. 이 ‘아이비 클래스’에는 3학년 6명, 2학년 14명, 1학년 21명 등 재학생 167명의 4분의 1이 속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외국어고 등도 이 제도를 앞다퉈 도입할 태세다. 서울 한영외국어고는 최근 학생들의 희망을 받아 10여명을 대상으로 별도 프로그램을 계획중이다.

▽일반고에도 바람〓이처럼 해외진학 희망이 느는 것이 꼭 비교내신제 폐지에 따른 특수목적고의 자구책만은 아니다. 서울 강남 등지의 일반고에서도 개인 차원의 해외진학 준비사례가 크게 늘어난 것.

경기고의 한 진학상담교사는 “성적이 우수하고 재력도 있는 집안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바로 해외진학하려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개별적으로 SAT를 준비중인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 개인과외’를 선호한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려는 김모군(17·고1·서초구 서초1동)은 “주2회 영작문 학원수업으로는 부족해 겨울방학부터 아예 미국인 대학강사를 초빙, 주3회 과외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군은 자신과 같은 경우가 주변에 30여명 정도라고 전했다.

실제 강남지역에는 SAT 준비학원들이 잇따라 들어섰고 시내 서점에서도 SAT 관련서적이 많이 팔리고 있다. 교보문고의 황혜정씨는 “지난해까지는 SAT 수험서가 월평균 15∼20권 나갔는데 최근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소개했다.

▽어떻게 봐야 하나〓이같은 현상에 대해선 찬반론이 팽팽하다.

서울고의 한 교사는 “우리 대학교육의 질이 높고 입시제도가 안정적이라면 이렇게 우수한 학생들이 외국대학의 학부로 ‘직행’하겠느냐”고 반문하며 “능력만 따라준다면 일찌감치 ‘세계경쟁’에 나서는 직접 유학도 훌륭한 대안”이라고 찬성했다.

반면 단국대 부속고 박용성교감은 “연 4만∼5만달러의 경비를 부담할 수 있는 상류층만 가능한 일이어서 일반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키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이렇게 ‘미국행’을 준비중인 학생들은 부모가 고위 공무원 또는 중견기업 중역 등 중산층 이상인 집안이거나 어려서 해외생활을 경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아들을 미국 MIT로 ‘직행’시킨 이모씨는 “솔직히 말해 국내 입시제도의 문제점 때문에 내가 져야 할 경제적 부담이 상상 이상”이라고 털어놓으며 “이런 ‘길’을 선택하려는 부모들은 이것이 고육책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이같은 찬반론을 넘어서서 서울대 김계현(金桂玄·교육학)교수는 “속칭 일류대학도 세계 수준에 못미치는 점이 많아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니겠느냐”면서 “국내 대학들의 개혁이 더욱 가속화돼야 한다는 일종의 신호”라고 진단했다.

◆‘아이비 리그’란

48년 미 동북부의 유서깊은 명문 사립대들이 풋볼리그를 시작한 데에서 유래된 말로 이들 대학의 오래된 건물 대부분이 담쟁이(Ivy)로 덮여 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 펜실베이니아 코넬 다트머스 브라운대 등 8개 대학을 가리키며 MIT대는 포함되지 않는다.

<반병희·이헌진기자>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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