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화제]대구·경북문인들 '시인 권환 유택보존 기금' 모금

  • 입력 2000년 11월 29일 11시 28분


그리고 여보 어린애 어머니는/고무래질 그만두고 집으로 가서/어린애 젖먹이고 저녁밥이나 지으라니까/어린 것도 점두룩 굶어서 배고프겠지만/해산(解散) 때도 아직 못벗은 당신이/종일 숨을 헐떡이며 고무래질 하느라고/얼마나 몸이 괴롭고 고단하겠소

밀레의 '만종'을 시로 옮긴 것일까? 고된 노동에도 서로를 토닥거리는 농촌 부부의 정이 잘 드러난 이 시는 권환(1903~1952)이 쓴 '보리'라는 작품중 일부이다.

1930년대 카프에서 활동했고, 해방직후엔 조선문학가동맹의 서기장으로 임화, 이태준 등과 함께 문단을 이끈 시인 권환. 그는 다른 문인들처럼 월북하지 않고 마산에서 폐결핵으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시인은 민족반역자 친일분자들에게 '가거라'란 시로 질타하기도 했다. '제국주의 품안에서 살이 찐' 매국노들에게 '얼싸안고 정사하라'고 매서운 붓을 들이댄다. '동녘하늘에 태양이 떠오르기전에/가거라 어둠의 나라로/머언 지옥으로' 가라고 준엄하게 꾸짖기도 했다. 최근 그의 묘소가 경남 창원에서 방치된 채로 발견돼 문인과 독자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부산지역의 시모임 '지청과 단청' 회원과 문인 등 100여 명이 권환의 묘지를 발견한 것은 지난 12일. 이들은 이날 권환 내외의 묘소에 참배하기 위해 시인의 출생지인 경남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를 찾았다.

다행히 묘소는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형색은 한 시대의 문단을 이끌었던 시인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초라했다. 뗏장이 떨어져나가 붉은 흙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정리되지 않은 주변에 관목이 즐비했다. 묘비가 하나 세워져 있었지만 이나마 시인이 사회주의자라는 오명이 벗겨지고 나서야 세워진 것이라고 했다.

이날 회원들과 함께 묘소를 찾았던 평론가 황선열 씨는 '시인 권환 유택 보존을 위한 기금' 모금을 추진하고 있다.

황씨는 "현재 평론가 구모룡씨등 대구-경북지역 문인들이 모금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시인의 종가인 안동 권씨 일가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그간의 활동을 소개했다. 시인 권환 유택 보존 운동 기금 통장(부산은행 106-12-044056-7 황선열)도 마련돼 있다고 한다.

안병률<동아닷컴 기자>mok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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