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항공통신-관제사 부부 성한용-정혜인씨

  • 입력 2000년 10월 23일 18시 50분


“공항 상공에 구름 한 점 없다. 운항에 참고하도록….”(남편)

“1번 활주로 착륙을 허가한다. 빈 손으론 안돼요.”(부인)

부부 사이인 김포공항 항공통신사 성한용씨(35)와 관제사 정혜인씨(32)는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 이렇게 화해한다.

건설교통부 산하 서울지방항공청 공무원 신분인 이들은 국내 최초의 항공통신사, 관제사 부부. 통신사는 운항 중인 항공기가 알아야 할 기상 조건이나 항로 등 각종 정보를 항공사나 관련 기관에 중개하는 일을, 관제사는 항공기를 공항에서 무사히 이착륙시키는 일을 각각 한다. 두 사람 모두 항공기를 목적지 공항까지 안전하게 유도하는 직업을 가진 탓에 이들의 대화에서 항공 용어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슷한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를 잘 이해하죠. 근무하는 곳도 공항 내에서 가까운 통신실과 관제탑이어서 비자금을 조성할 수도 없어요.”

부부 사이에 숨길 것이 없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근무하지만 이들이 집에서 만나는 경우는 1주일에 두 번뿐이다. 24시간 내내 항공기를 유도하는 직업 특성상 3개 조가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북한에서 비행기가 들어오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에 참가하는 각국 정상들의 특별기가 잇따라 오는 바람에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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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행기와 교신할 땐 약간 긴장이 됐어요. 하지만 기장이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하자 왠지 모르게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점심도 걸렀지만….”(부인 정씨)

정씨는 또 최근 발생한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때도 많은 걱정을 했다. 파업에 동참하는 조종사들이 김포공항으로 항공기들을 한꺼번에 몰고 와 세워둔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 이렇게 되면 공항 활주로나 계류장은 마비돼 버린다. 그러나 대한항공측이 국내외 다른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 운항을 사전에 취소해 우려했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한항공 비행기들을 한 곳으로 모아두는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어요. 아찔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관제사와 통신사는 근무 시간 중 자리를 뜰 수 없어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한다. 피크타임에는 항공기가 1∼2분 간격으로 뜨고 내리기 때문에 조원들이 교대로 식사를 해야 한다. 20분 안에 식사 교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식사 시간은 10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통신사와 관제사들이 소화불량이나 위염으로 고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통신사와 관제사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키워온 꿈을 이룬 경우가 많다. 월급도 많지 않고 휴일도 없이 격무에 시달리지만 꿋꿋이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부인 정씨도 중학교 시절 본 영화 ‘에어포트’에서 관제사들이 위기에 처한 항공기를 무사히 착륙시키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관제사가 되는 꿈을 키웠다고 말한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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