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페라단 박기현단장, 중국서 '황진이' 무대 올린다

  • 입력 2000년 8월 23일 18시 50분


박기현 한국오페라단 단장(40)의 별명은 ‘꽃분홍’이다. 분홍 정장만을 즐겨입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오페라단의 초청장과 프로그램은 항상 분홍색 봉투에 들어있다.

“정확히는 분홍에 오렌지빛이 감도는 색깔이죠. 설레지 않습니까. 오페라 티켓을 받아든 관객이 이 색깔처럼 설렘과 기대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예요.”

그가 이번에는 중국 수도 베이징을 황진이의 분홍빛 미소로 설레게 만든다. 지난해 4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돼 ‘창작 오페라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평가를 받은 이영조 작곡 ‘황진이’. 24, 25일 베이징 ‘세기극원(世紀劇院)’ 에서 ‘조선 가인(佳人)’의 면모를 마음껏 뽐낸다. 소프라노 김영미 김유섬이 황진이역으로 출연하고, 중국 중앙가극원 오케스트라를 김정수가 지휘한다.

서울과 베이징을 바삐 오가고 있는 박단장은 “여건은 충분치 않았지만 중국측의 적극적 자세로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중국측은 이번 공연을 단지 일회성의 문화교류가 아니라 ‘어떻게 민간 오페라단이 수지를 맞추고 외국공연까지 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벤치마킹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는 것.

중국 무용단이 느린 한국 전통춤을 소화하지 못해 서울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팀을 급히 데려가 연습에 합류시키기는 등 열성을 다한 끝에 음악과 무대 양쪽에서 만족할만한 무대가 될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런민일보(人民日報)가 두 차례나 공연 예고기사를 싣는 등 현지인들의 관심도 높다. 이번 공연에 이어 내년 4월에는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후지하라 오페라단 초청 공연이 예정돼 있고, 2001년 말 로스앤젤레스시가 주최하는 ‘이민사 100주년 기념축제’에도 초청 교섭을 받고 있다.

올해 3월 한국오페라단은 10주년을 맞았다. 연공서열이 뚜렷한 성악계에서 10년전 서른살 처녀의 몸으로 오페라 제작에 뛰어들었을 때 주위의 곱지않은 시선을 수도 없이 느꼈다. 그러나 유럽에서 성공한 화제의 젊은 성악가들을 한발 앞서 캐스팅했고, 연출이나 무대도 공을 많이 들여 관객들의 호감을 샀다. ‘한국오페라단은 믿을만 하다’라는 입소문이 매표의 호황과 원활한 협찬을 이끌어냈다.

“매번 창단공연처럼 목숨을 걸고 합니다. 단장 혼자 오페라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조금 마음을 놓고 있으면 관객이 먼저 알아보니까요.”

노래를 좋아하는 어머니 밑에서 주저없이 성악과를 택했던 그는 이화여대 재학중 뜻하지 않게 목이 상하면서 ‘오페라 제작’으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대신하기로 했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정치광고학을 전공하며 ‘설득의 기술’을 익힌 것이 오페라단장 생활에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유학에서 돌아와 오페라단을 창단하기까지 또 2년의 기간이 흘렀다.

“창단 목표로 삼은 것이 대중화 전문화 세계화입니다. 앞의 두가지는 웬만큼 궤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한 10년 마지막 꿈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그는 “50살까지 후회없이 오페라에 정열을 바치고, 믿을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긴 뒤 물러나는 것이 목표”라며 환하게 웃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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