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풍속도]동호회 활동 "눈치보기 이젠 없다"

  • 입력 2000년 6월 6일 20시 08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통과하면서 와해 위기를 맞았던 대기업내 동호회들.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던 시절, 동호회 활동은 ‘사치’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나 경기회복과 젊은 ‘디지털맨’들의 잇단 입사, 그리고 대기업의 벤처 따라하기 붐에 따라 기업내 동호회들이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이젠 기업 입장에서도 창의력있는 인재를 확보하고 재기발랄한 젊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애정을 심어줘야 할 판. IMF 이전과는 달리 적극적인 인재관리와 마케팅 차원에서 동호회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프로급 마니아가 모인다〓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해 말부터 복장자율화를 도입한 제일제당. 올들어 회사안에도 복장 자율화 ‘뺨치는’ 동호회들이 새로 생겼다.

진국다시다밴드, 멸치다시다밴드, 옛날 조미료 이름을 딴 아이미밴드…. 지난달 발족한 음악동호회들이다. 구성원의 연령, 좋아하는 음악 장르별로 나뉘어 있다. ‘진국’은 올드락 취향, ‘멸치’는 헤비메탈, ‘아이미’는 초보 연습생 위주로.

진국 다시다밴드의 간사를 맡고 있는 김태성과장은 “단지 사람이 좋아서 모인다거나 놀고 먹자는 식의 회원들은 없다. 아마추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마니아들만 모인 것”이라고 단언한다.

전자상거래 전문기업인 한솔CSN에선 X세대 직원들을 중심으로 ‘스타크래프트 동호회’(가칭)가 7월 결성을 목표로 물밑작업을 진행중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다〓LG그룹은 그룹차원의 동호회 지원 커뮤니티 사이트 ‘CC 타운’(www.lgcc.co.kr)을 5월초 개설했다. 이들 동호회의 모든 연락은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며 오프라인 활동과는 별도로 채팅을 통해 24시간 대화가 이뤄진다.

벌써 ‘영화보기’ ‘LG트윈스 팬클럽’ ‘만화를 사랑하는 모임(만사모)’ ‘맛기행’ ‘길떠나는 사람들’ ‘남과 여’등 1200명의 회원이 참여해 150개의 ‘타운’(모임방)이 구성됐다. 동호회뿐 아니라 그룹내 동문회 등 친목모임까지 사이버 공간으로 끌어들인다는 계획.

CC타운 운영자인 박정한과장은 “인터넷의 편리함이 동호회 활동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다”며 “온라인을 통해 관심을 공유하다 새로운 동호회로 발전하는 경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며 흡족한 표정.

▽동호회로 인사관리〓한솔CSN은 300여명의 사원을 100% 동호회에 가입시킨다는 ‘1인1동호회 갖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활동비도 100% 지원하며 수도권 중부 호남의 세 지역권으로 나눠 회사 차원에서 ‘관리’한다.

“애써 확보한 인재가 최대한 회사생활을 즐기게 해주는 것이 회사의 역할입니다. 창의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인사관리의 대원칙에서 동호회 활동을 장려하고 있지요.” 인사팀 류재경팀장의 설명.

삼성경제연구소 인사조직실장 공선표 이사는 “고용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지면서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다”고 전제, “회사에 애정을 갖게 하고 조직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높임으로써 인재유출을 방지하는데 동호회를 통한 ‘인사관리’는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제일제당은 7월 알프스 몽블랑과 마테호른 빙벽에 도전하는 사내 등산동호회 회원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할 계획. 등반에 드는 비용의 상당부분은 물론 등반중에 필요한 식량으로 자사 즉석식품 ‘햇반’ ‘레또카레’등을 제공한다. 동호회 활동을 인재관리 차원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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