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 입력 2000년 5월 19일 19시 48분


담장 너머로 아이 웃음소리가 들려오면 ‘잘 되는 집이구나’ 여긴다 했다. 그런데 여기 머지않아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끊길 마을들이 있다. 아이들의 삶터이며 마을의 구심인 초등학교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930. 99년 한해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초등학교 숫자다. 전체의 15%에 달하는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지만 대학 입시제도, 과외허용여부, 촌지가 교육문제의 전부인양 여겨지는 사회풍토 속에서 그 숫자의 의미는 체감되지 않았다.

책은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실렸던 열 개 분교에 대한 탐방기록이다. 그 작은 학교에 깃들인 아이들과 그 가족의 삶을 사진과 글로 묘사한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다. 아울러 교육환경개선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폐교정책’이 정말로 작은 학교 아이들에게 ‘복된’ 교육환경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아프게 되묻는 질의서다.

99년 3월 폐교된 경남 남해군 조도의 미남분교. 뭍의 큰 학교로 통합돼 아이들이 배를 타고 통학하고 있다.

미남분교 전교생 다섯명은 모두 엄마가 없다. 부모가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나갔거나 이미 소식이 묘연한 결손가정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에게 전교생 다섯명인 학교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름을 불리워가며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는 것과 전교생 500명의 학교에서 ‘뭇 아이들 중 하나’로 자라는 것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학교가 사라지면 징소리 울리고 만국기 휘날리고 어른들의 술추렴도 벌어지기 마련인 마을 운동회도 사라진다. 그것은 한 마을의 신명과 맥박을 앗아가는 일이다. 사라져가는 작은 학교는 마을 사람들이 자식교육을 위해 ‘땅도 내놓고 벽돌도 직접 찍어 쌓아 올리고 보릿고개에도 안 꺼내먹은 보리쌀을 내놓아 만든 우리들의 학교’였던 것이다.

작은 학교를 없애는 농어촌학교 통폐합정책은 도시지역에 버금가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추진된다. 여러 학교에 교육비를 나누기 보다는 한 학교에 집중투자하겠다는 합리성과 효율성의 정책이다. 그러나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의 장호순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는 그 효율성의 허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개인의 창의력과 지역사회 공동체가 중시되는 21세기에는 개인의 독창성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교육은 학생수가 적은 지역사회 학교에서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작은 학교의 통폐합은 이런 교육환경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다.”213쪽 7,000원.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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