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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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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금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다. 원래 자연은 아날로그 상태지만 인간의 기술문명은 디지털세계를 창조했다. 때문에 디지털 세계는 인공의 세계이며 사이버의 세계다. 그러나 아날로그의 세계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이미 우리는 시계바늘의 모호한 위치로 표현되는 시간보다 숫자가 보여주는 명료한 시간 감각에 더 익숙해 있지 않은가.
인터넷이 지배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모든 매체는 상호융합하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매체들이 갖고 있던 개별적 특성이 점차 사라짐을 의미한다. 기존의 아날로그 매체들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통합되면서 오디오와 비디오 및 모든 텍스트의 상호교환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는 책과 신문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고, 친구에게 보내는 전자메일은 편지뿐만 아니라 음성과 동영상까지 담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이처럼 급변한 상황에서 언론정보학은 먼저 미디어의 개념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디어를 단순히 정보전달의 수단 정도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하고 현실을 매개하는 매체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자신이 현실을 창조하는 주체의 구실도 한다. 인터넷이 창출하는 가상세계는 사람들이 실제로 일하고 즐기고 만나는 생활세계가 됐다. 이제 언론정보학은 가상세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수용자 개념에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매스 미디어가 지배적인 시대에는 송신자와 수용자의 분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수용자가 곧 송신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뉴스와 평론은 더 이상 기자나 평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네티즌이 기자가 되고 평론가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많은 장비와 전문인력이 필요했던 방송조차 이제 몇 명의 청소년이 간단한 홈 비디오 카메라를 이용해 인터넷 방송을 하는 시대가 됐다. 매일같이 생겨나는 온라인 신문과 웹진과 인터넷 방송이 언론의 지평을 끊임없이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인터넷이나 웹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 새로운 매체들은 개인적 매체이면서 동시에 공적 매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처럼 개인의 사적 담론과 공론장(public sphere)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정보통제의 방법과 주체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느냐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한편 모두가 언론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전통적 저널리즘 개념도 변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의 역할은 주로 정보를 수집하고 보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정보생산자가 될 수 있는 디지털 사회는 ‘편집(redaction)’의 사회이다. 이 ‘편집’의 사회에서는 정보나 지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처리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디지털 사회에서는 언론인의 역할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기자가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수정하고 편집(edit)하고 분석하고 가공하는 ‘편집자(redactor)’의 역할로 변모해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메시지 효과연구도 달라질 것이다. 효과연구가 주목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결과이지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수용자가 곧 송신자가 되는 상황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의미는 단순히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참가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된다. 이 상호작용 과정을 탐구하지 않고서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앞으로 언론정보학은 효과에 대한 관심 못지 않게 과정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갈 것이다.
양승목(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다음회는 ‘교육학’으로 필자는 경희대 교직과 강인애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