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여성의 몸에 관한 철학적 성찰'

  • 입력 2000년 2월 11일 19시 55분


▼'여성의 몸에 관한 철학적 성찰' 한국여성철학회 엮음/철학과현실사/ 223쪽/ 8000원▼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몸의 신체적 구조와 기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몸의 차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근거로 사용돼 왔다. 철학을 전공하는 8명의 여성 학자들이 이 ‘몸의 차이’에 투영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들을 파헤치고 나섰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여자는 그의 몸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여성 억압적인 통념에 대해서 학문적 철학적 대응 방식을 모색한다.

국민대 강사인 이숙인씨는 “진정한 의미의 육체 해방이란 육체의 대상화와 수단화를 지양함으로써 육체가 능동적인 주체 형성의 장이 되는 것”이라며 육체와 정신을 분리될 수 없는 통일체로 본 유가(儒家)의 몸 담론에서 바람직한 모델을 찾는다. “유가의 몸 담론은 몸을 외모에 한정시키거나 지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또 지식에 의해 몸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균관대 강사인 김세서리아씨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았던 유가의 도덕적 몸 가꾸기(修己)는 자율적으로 주체적인 인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지향하는 의식적 작업이며, 감성적 신체 그대로를 인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한국외국어대 강사인 장영란씨는 신화 속에서 여성주의적 사유의 원형적 모델을 발견한다. “아버지 신화는 선형적(線形的) 세계관과 이원적 가치관, 위계적 인식론 등의 모델을 제공하는 데 반해 어머니의 신화는 순환적 세계관과 일원적 가치관을 보여주며 동일성의 원리에 의해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인식론의 모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두 가지 사유방식이 대립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머니 신화의 수평적이고 총체적인 사유방식과 아버지 신화의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사유방식은 재통합의 과정을 거쳐 종합적이고 보편적인 양상을 표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만나는 대중매체 속의 여성의 몸은 이미 남성의 시선과 상업주의에 짙게 물든 ‘대상’으로 존재한다. 감리교신학대 한정선교수는 “대중 매체는 한편으로는 아름다움과 에로틱의 민주화에 기여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저속하고 탈승화적이며 탈에로스화된 문화를 확산시키는 주범”이 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성 ‘주체’가 쓰는 ‘저항의 텍스트’를 통해 탈에로스화된 대중 매체의 상업주의 문화를 극복하고 진정한 ‘에로스’를 구현하고 ‘참된 유혹’의 문화로 저항할 것을 제안한다.

이화여대 강사인 김주현씨도 “여성들의 경우 몸은 남성적 시선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물신화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떠나지 않고서도 심미적 쾌락을 경험할 수 있는 여성들의 몸과 눈은 남성적 언어가 포착하지 못한 예술적 진리와 심미적 쾌락을 찾아낼 수 있다며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읽을 것을 역설한다. 223쪽 8000원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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