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루벤스의 그림과 생애'

  • 입력 2000년 1월 8일 08시 46분


▼야콥 부르크하르트 지음/한명출판▼

역사화 종교화 풍경화 인물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폭넓은 작품세계, 화면 가득 넘쳐 흐르는 생동감과 힘찬 선, 화려하고 풍부한 색채, 웅장하고 변화무쌍한 구도, 야성적이고 관능적인 표현….

17세기 유럽 바로크 미술의 거장인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일대)의 천재화가 피터 폴 루벤스(1577∼1640).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 ‘개성상인’의 화가이기도 하다. 그를 빼놓고 바로크 미술을 말할 수 없을만큼 루벤스는 곧 바로크 미술로 통한다.

그러나 정작 루벤스의 미술을 제대로 소개한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바로크 미술 연구서 역시 부족하다. 국내외 모두 마찬가지다.

루벤스 미술에 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그래서 값지다. 원서가 비록 오래 전인 1898년에 출간되긴 했지만 이 책이 번역됨으로써 이제 국내에도 루벤스 미술에 관한 읽을만한 책이 생긴 셈이다. 저자는 19세기의 스위스의 유명한 미술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부르크하르트.

부르크하르트는 루벤스의 다양한 그림을 통해 그의 미술세계의 전체적인 특징을 개괄적으로 살피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루벤스가 바로크미술을 선도하면서 서양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화가였다고 평가한다. 그 족적은 르네상스 미술의 정형화된 틀을 깨뜨려 생동감 넘치고 화려한 미술세계를 개척해 나갔다는 점이다.

16세기 르네상스 미술은 균형 조화 대칭에 집착함으로써, 안정감은 있었지만 너무 정적(靜的)이었고 그로 인해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었다. 그것을 루벤스가 뒤흔든 것이다.

루벤스의 그림은 우선 장르를 넘나들면서 폭넓은 진폭을 보여준다. 강렬한 빛을 사용하기도 하고 이전의 좌우대칭 구도를 과감히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다이나믹하고 드라마틱하다.

저자는 루벤스 그림의 이러한 특징을 우선 여체에서 발견한다. 루벤스의 여체는 힘이 넘친다. 단정하고 날씬한 여체가 아니다. 약간 뚱뚱한 듯 풍만하면서 남성적인 역동감이 살아 숨쉰다. 그러면서도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고 때론 화려하다. 이것은 바로 바로크미술의 특징 그대로다.

이 책은 그러나 100여년전의 책이다. 이 대목에 이 책의 덕목과 한계가 함께 담겨 있다. 그 한계는 루벤스의 생애와 그림을 연결지어 보겠다는 저자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 설명이 정치하지 못하다는 점. 하지만 그것은 부르크하르트의 한계라기보다 당시 미술사연구의 한계다.

그 한계에도 이 책의 번역 출간은 서양미술사를 보는 우리의 눈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번역을 맡은 최승규 연세대교수(미술사)가 세계 곳곳의 박물관 미술관 등지에서 루벤스 그림을 촬영해 수록함으로써 읽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287쪽, 2만3000원.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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