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스님들 책 잘 팔린다…법정-원성- 현각스님 등

  • 입력 1999년 11월 30일 19시 09분


스님들이 세기말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필자로 떠오르고 있다.

올 최대 베스트셀러인 원성스님의 산문집 ‘풍경’(이레)은 8월말 출간돼 24만여부가 팔렸다. 하루 평균 주문량 4000여부. 11월초 나온 현각스님의 구도기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열림원)는 3주만에 9만부가 팔렸고 계속 판매가 늘고 있다.

▼원성스님 '풍경' 24만부 팔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초판도 아닌 개정판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9월초 개정판 1쇄 발간 후 10만부가 팔렸다. 발간 24년만의 개정판이지만 책 표지를 양장본으로 바꾸고 문체와 게재순서를 다듬었을 뿐이다.

스님들이 쓴 책의 인기는 올해 30만권 이상 팔린 단행본이 단 한 종도 없다는 현실에 비춰 ‘이변’.출판계에서는 일종의 명상서 수행서 격인 이런 책들이 널리 읽히는 것을 독서패턴 변화로 해석한다.

▼독서패턴 변해 명상서등 인기▼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대중이 닮고 싶어하는 우상의 모습이 바뀐 것”이라고 분석했다. “80년대만 해도 기존의 정치 사회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영웅이 우상으로 떠받들어졌지만 세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젠 보통사람처럼 고뇌하고 자기변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친근한 우상으로 새롭게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것.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내면의 참된 자아를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되기도 한다.

▼'무소유의 삶' 호기심 대상▼

출판기획자들은 특히 성철 큰스님과 원성, 현각, 법정스님의 미묘한 차이에 주목한다. 똑같이 불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장좌불와(長坐不臥) 10년’ 전설의 성철스님이 저 높은 곳에 있는 신비한 고승의 모습이라면 어머니 손에 이끌려 운명적으로 산문에 들어선 원성스님과 미국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달리다가 내면의 목소리를 좇아 이국 땅에서 구도하는 현각스님, 강원도 산골에서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법정스님의 모습은 호기심의 대상이자 우리안에 있는 또다른 ‘자아의 목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책 내용만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만행…’의 현각스님 경우 지난해말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로 구도행적이 방영돼 책 출간전에 이미 익숙해진 인물. ‘풍경’과 ‘무소유’의 경우는 시인 류시화씨가 편집기획에 참여해 책의 시각적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기획방향을 이끌었다.

▼세속 시끄러운수록 靈性찾아▼

스님이 쓴 책의 인기와 관련해 또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조계종사태가 책 판매에 전혀 타격을 주지 않은 점.

열림원 정은숙주간은“세속이 시끄러울수록 때묻지 않은 영성(靈性)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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