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살육의 세기 조명 '코소보 그리고 유랑'

  • 입력 1999년 10월 6일 18시 43분


전쟁이 한창인 코소보의 농촌 슈바레카의 한 피자가게. 아름다운 청춘남녀가 ‘영원히 이 땅을 떠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서 결혼식을 올린다.

과연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에서 평화로운 결혼식이 되도록 놔둘 것인가, 아니면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습격한 것처럼 꾸며 결혼식을 피바다로 만들 것인가? 알바니아 사령관은 서방언론에 제공할 사진 촬영을 위해 사진기자를 고용해놓고 고민에 빠진다. 결국 그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조작을 위해 결혼식을 피바다로 만들 것을 명령한다.

1일부터 서울 동숭동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코소보 그리고 유랑’은 연출가 오태석의 신작. 그는 “이번 작품으로 살육의 시대인 20세기를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둘다 한국인인 자원봉사자와 사진기자의 눈으로 본 코소보 전쟁. 세르비아 알바니아 이종족 간의 인종청소 뿐 아니라 동족 간의 살육도 크게 부각된다. 남북한 간의 비극이 연상되는 장면.

주인공은 6·25 때 북한 인민군 소좌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교환 때 제3국 브라질행을 택해 평생을 유랑하는 한기정(정원중 분). 남한은 금강산 관광으로, 북한은 새천년범민족대회로 그를 포섭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원봉사자로 코소보로 들어가 유랑생활을 마감한다.

무거운 주제를 생동감있는 다양한 형식미로 쉽게 풀어나가는 오태석의 연출실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시종 긴장을 유지하던 연극은 종반부분 한기정과 사진기자가 울부짖으며 쏟아내는 직설적인 대사로 주제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극적 감동이 상쇄됐다. 화∼금 7시반. 토 4시반 7시반, 일 3시 6시. 7000∼1만5000원. 02―745―3966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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