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7월 20일 19시 2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김미현(문학평론가)〓3월 출간된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문학동네)을 추천한다. 알바니아 고원지대의 관습법인 ‘카눈’을 통해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뤘다. 90년대 한국소설의 아킬레스건인 ‘서사성, 철학성, 보편성’이라는 세 요소를 절묘하게 다루고 있다.잘 읽히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것이 진정한 서사성임을 일깨워준다.우리의 약점을 아프게 공격하는 작품이다.
▽함성호(시인)〓4월 출간된 박찬일 시인의 시집 ‘나비를 보는 고통’(문학과지성사)의 일독을 권한다. 그의 시선은 90년대에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의 꿈을 가진 사람의 것이다. 80년대 사람들이 애벌레에서 나비처럼 변절, 혹은 변화하며 90년대에도 ‘중심’에 서려 하는데 반해 시인은 이를 거부한다. 아웃사이더로서의 에너지가 때로는 미학적 통제없이 거칠게 분출된다. 그것이 읽는 이를 더 가슴 아프게 한다.
▽조경란(소설가)〓5월 출간된 프랑스 소설가 장 에슈노즈의 ‘금발의 여인들’(현대문학)을 추천한다. 여성 스타 연예인의 돌연한 증발과 그 후 행적의 추적이 줄거리. 추리소설 기법으로 쓰여졌다. 이 작품은 영상시대에 소설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말을 무색케 한다. 속도 빠르고 인물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21세기에는 이런 소설이 살아남겠구나 싶다.
▽진정석(문학평론가)〓5월 출간된 김정환의 산문집 ‘전망은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사회평론)을 권한다. 그의 글들은 말랑말랑한 경수필이 주종을 이룬 풍토에서 보기드문 중(重)수필이다. 특히 박노해와 김수영에 대한 분석은 탁월하다. 평론가와는 다른 작가적 직관으로 ‘이건 진짜고 이건 가짜다’라고 일순에 육박해 들어간다.
▽나희덕(시인)〓1월 출간된 이문재시인의 시집 ‘마음의 오지’(문학동네)를 꼽는다. 발달한 현대문명세계에서 시인이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를 치열한 자세로 탐구한 시들이다. 시인은 농업적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한다. 사상성이 강해지면 시로서는 안 좋아지는데 시적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계에 대한 모색을 계속해 간다.
▽이상운(소설가)〓4월 발간된 프랑스 여성작가 아멜리 노통의 ‘반박’(열린책들)을 단숨에 읽었다. 은퇴한 노부부가 전원생활을 구가한다. 그러나 이들의 평화를 방해하는 이웃이 있으니…. 우리나라 소설은 일상생활과 유사한 방식, 시시콜콜한 이야기 중심인데 비해 이 작품은 ‘나와 타자는 전혀 별개인가’ 등의 철학적 질문을 알레고리로 풀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