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필에 묻어나는「시인의 내면」…정신분석가가 본 3인의 心象

  • 입력 1999년 7월 13일 18시 36분


펜과 원고지 대신 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대에 시인의 필적이 고스란히 담긴 시집이 출간됐다. 도서출판 찾을모가 원로·중견시인들에게 그간 써온 시 중 스스로 골라뽑은 작품들을 직접 손으로 쓰게해 시집을 낸 것. 김춘수의 ‘꽃’, 신경림의 ‘목계장터’, 정현종의 ‘환합니다’ 등 3권이다.필체는 시인의 또다른 얼굴. 규격화된 활자가 감추어주던 시인의 내면이 친필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이 시집을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정신분석가 윤순임씨(53·서울정신분석상담연구소장)은 시집의 필체에 드러난 각 시인의 심상(心象)을 이렇게 읽어낸다.

▽김춘수시인〓여성의 글씨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필체다. 시 ‘소년’에서는 소년의 미숙한 아름다움과 수줍음이 돋보인다. ‘서풍부’의 글씨는 면사포 쓴 신부같다. 전체적인 필적은 더영글고싶은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무엇인가에 도달하기 위해 여전히 이것저것 찾고 있는 모습이다.

▽신경림시인〓단정한 글씨다. 톨스토이를 연상시킨다. 소박하되 윤리적이고 사상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갈대’의 필체는 모시적삼같다. 단정하지만 자신의 정열을 여미는 갑갑함이 있다. 매사에 조심스러운 자세가 보인다.

▽정현종시인〓내면의 소리에 충실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자유로운 글씨다. ‘고통의 축제2’를 보면 있는 그대로의 삶이 나타난다. 그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고통이 있어도 세상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는 듯하다.

이번 시집은 자료로서의 가치도 적지 않다. 신경림시인처럼 10여년 전부터 컴퓨터로 글을 써온 경우도 그렇지만 지금껏 만년필로 글쓰기를 해온 정현종 시인도 자신의 원고를 모아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현종시인은 “오래전 발표했던 시를 다시 내 손으로 쓰면서 희미했던 내 모습이 선명해졌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의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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