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칼 「지적 사기」논쟁, 국내서도 재연될까

  • 입력 1999년 6월 8일 20시 06분


“프랑스 철학은 사기”라고 외친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뉴욕대교수)과 프랑스 철학계의 논쟁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소칼의 문제작 ‘지적사기’가 곧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다. 이에 앞서 학술계간지 ‘현대사상’ 여름호는 최근 ‘지적사기’의 서문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소칼은 이 책에서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펠릭스 가타리, 자크 데리다 등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글쓰기가 ‘사기’에 불과하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지적사기’는 97년 10월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미국과 프랑스 지성계에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소칼은 프랑스 철학자들이 계몽주의의 합리적 전통을 거부하고 자연과학의 개념과 용어를 멋대로 남용하면서 모호한 주장으로 세계 지성계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학용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말의 유희에 빠져 지적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설명. 보드리야르의 ‘복합 굴절의 초공간’‘법칙의 가역화’, 라캉의 ‘위상 기하학’, 크리스테바의 ‘집합이론’ 등이 그 남용 사례라는 것이다.

“완전히 동떨어진 맥락에서 전문용어를 뻔뻔스럽게 남발하면서 어설픈 학식을 드러낸다. 의도는 뻔하다. 과학에 무지한 독자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다.”

이같은신랄한비판에자존심 강한 프랑스 철학계도 그냥 있지 않았다. 그들은 ‘르몽드’ 등 유력 일간지를 통해 반격의 포문을 열었고 지난해엔 반론을 담은 ‘과학적 사기’란 책을 내기도 했다.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과학적 개념은 하나의 상징인데도 ‘무지한’ 소칼은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요지.

그러면 국내 철학계에서는 소칼의 이런 독설적인 비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번 ‘현대사상’에 서문을 번역 게재한 이희재는 “가슴 뜨끔한 대목이 많다”면서 “현학적인 글쓰기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최종욱 국민대교수(철학)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처럼 단선적이고 과격한 비판은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미국의 분석철학적 사고 때문이다. 미국 지성계가 프랑스의 지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이같은 미국식 견해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찬반 양론이 팽팽한 우리 철학계 현실에서 ‘지적사기’ 번역소개를 계기로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 지성계가 극복해야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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