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36)

  • 입력 1999년 6월 7일 18시 45분


내가 그의 얘기를 꺼냈더니 교도관이 픽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마 나갔을 거요.

어떻게 무기라는데.

그러니까, 죽어서 나갔겠지.

꺽다리라는 다른 아이 생각이 난다. 그 애는 이십대 초반이었는데 내 이름도 나의 죄명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내게 책을 빌려 달라고까지 했을 정도로 멀쩡했다. 그 녀석 이름이 뭐였더라. 농구선수처럼 깡마르고 키가 커서 소내 체육대회가 열렸을 때엔 누구나 저 녀석이 정신만 바르다면 최우수 선수가 될거라고 아까워 했다. 다만 소장이나 감사반이나 하여튼 높은 사람들이 시찰을 나오면 소동을 벌였다. 그들이 줄줄이 서서 들여다보면 그는 침을 뱉거나 쌍욕을 하는 것이었다.

야이 씨발놈들아 내가 무슨 짐승이냐? 왜 들여다 봐?

그래서 그 양반들이 얼른 자리를 뜨고 복도를 지나가면 또 욕이었다.

야이 나쁜 놈들아 머리에 똥테 두르고 폼 잡고 다니면 다야? 재소자 등치는 이 개새끼들아!

문을 발로 차고 길길이 뛰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교도관 서너 명이 들어가 사지를 붙들어 가죽 띠와 포승줄로 묶고 입에 방송구를 채우고 기진맥진해서 나오면 이번에는 문짝을 발로 차대던 것이다.

꺽다리는 역시 육개월마다 병동이 있는 교도소를 내왕하더니 차츰 말수가 적어졌다. 그의 쾌활함은 침묵으로 바뀌고 몸은 깡말라버렸다. 눈에 가득찼던 젊음의 활기도 사라졌다. 인상은 이미 중년 남자였다. 나는 운동시간에 모포를 널러 나온 그들 일행을 보면서 운동 담당에게 물었다.

저 꺽다리란 친구 많이 변했는데. 아주 기가 팍 죽었어요.

의젓해졌지요? 지가 별 수 있나. 변해야 나가서 살아남지.

아니 팍 조진 거 같은데….

많이 나았다구 하든데. 이젠 헛소리를 안하잖아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돌아오지 못할 딴 세상으로 가버렸다고 여겼다. 한 두어 해 동안에 그는 세 번쯤 왕복하고나서 완전히 돌덩이처럼 되어버렸다. 그는 나를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는 육 년의 형기를 채우고 사라졌다. 어느 누구든 경계선을 넘으면 안되었다. 밖에서나 안에서나. 징역에는 누구에게나 고비가 있기 마련이었다. 처음에 형을 받고 출발할 때. 그리고 교도소에서 독방에 갇혀 삼 년에서 사 년을 넘길 무렵. 구 년에서 십 년에 접어들 때. 마누라가 떠날 때. 가족들,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아이가 아플 때. 증오하던 담당이 다시 배치되었을 때. 억울하게 징벌을 먹었을 때. 뒷수정 차고 족쇄 묶여 창도 없는 캄캄한 먹방에서 엎드려 입으로 개밥을 먹을 때. 그 때에 그는 삶의 이쪽 경계를 넘어간다. 도저히 못견딘 혼이 몸 주변의 공간을 떠나 혼자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동우는 초반의 징역 사 년을 잘 견디고 오 년째에 가서 스스로를 떠났다. 그는 누구나 그렇듯이 반 년마다 병사로 갔다가 되돌아오며 점점 자신에게서 멀어졌다. 그가 나갔다는 말을 들었고 그의 형과 어머니가 아예 시골 집을 사서 데리고 내려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광주의 철영이는 그래도 항쟁 당시에 머물러 있어서 상황이나 동료들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으나 동우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그의 늙은 얼굴이나마 찾아가 만나볼 작정이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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