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복제품, 「가짜」와는 다르다

  • 입력 1999년 2월 28일 19시 00분


전남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백제시대 추정)은 국립광주박물관에도 있고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있다. 무덤에서 나온 금관은 하나일텐데 똑같은 게 두 곳에 있으니 그중 하나는 당연히 복제품일 게다. 그러나 그걸 구분한다는 건 문화재 전문가들에게도 난제 중의 난제. 문화재 복제품은 국립박물관 등의 주문을 받아 제작하고 검증도 받는다. 그래서 그냥 흉내낸 모형과는 다르다.

경북 경주 민속공예업체 삼선방의 대표 김진배씨(37). 가업을 이어 받아 11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는 김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복제품 제조 전문가다. 금관 허리띠 귀고리 청동기 철기 기와 토기 등 그가 만든 수천점의 복제품은 현재 전국 곳곳의 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김씨가 섬세한 귀고리 한쌍을 복제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한달. 경주 부부총에서 출토된 신라 귀고리의 경우, 지름 0.7㎜의 구슬 5천여개를 일일이 용접해 만든다.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금관 하나 만드는데는 대략 20일. 그는 세월이 만들어낸 청동기 철기의 녹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독일은 완벽한 복제품 제작 국가로 유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무 학예연구실장은 “독일에선 전구를 깨서 그 조각을 다시 붙여 원래 모습을 재현하는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고 전한다.

복제품은 진품과 모양 크기가 똑같다. 복제품은 문화재 진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다. 진품을 전시할 경우 훼손의 우려가 높다고 판단되면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높아 여러 박물관에서 전시할 필요가 있을 때도 복제품을 만든다.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국립박물관은 진품 전시를 원칙으로 한다. 부득이 복제품을 전시하게 되면 복제품이라고 명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람객을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실장은 설명한다.

복제품은 엄밀히 말하면 가짜지만 공익을 위해서만 사용된다는 점에서 가짜와는 다르다. 복제품엔 복제품이라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 토기 바닥에 제작자 이름을 새겨 넣는다든지, 보이지 않는 곳 일부를 일부러 도금하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깨알만한 도장을 찍는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복제품 표시를 하지 않으면 누군가 그것을 악용할 수 있다. 실제로 70년대 경주에서 어떤 이가 신라 토기 복제품을 마치 땅에서 발굴한 것처럼 속여 박물관에 신고했다 들통이 난 적도 있다.

복제품은 또한 판매할 수 없다. 진품으로 속여 거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복제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복제하지 못하는게 있다. 바로 종소리다. 85년 서울 보신각종을 새로 만들면서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의 소리를 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종은 복제했지만 종소리 복제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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