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마음의 투시도’…‘내면대화’유발 평정심 찾는데 그

  • 입력 1998년 12월 28일 19시 25분


“아, 에, 이, 오, 우. 위스키∼, 치―즈.”르네상스 서울호텔 고객관리 전담요원(GRO) 이은령씨(30). 그녀의 하루는 거울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화장을 마친 뒤에 입을 활짝활짝 벌리며 ‘웃기연습’을 하는 스마일운동. 근무 중에도 곳곳의 거울 쇼윈도 엘리베이터 벽 등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거울 보는 횟수는 1백회 이상. “거울 앞에서 비뚤어진 이름표와 옷매무새를 가다듬다보면 기분이 새로와져. 화날 때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며 다짐해요.”

유리의 뒷면에 은이나 알루미늄으로 도금해 사물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것이 특징. 한해를 정리하는 시기. 거울앞에 서서 얼굴을 물론 마음까지 비춰보면 어떨까.

▼예뻐질까,착해질까▼

심리학자 최창호씨가 최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사탕바구니 앞에 거울을 놓았을 때와 놓지 않았을 때 가져가는 양이 크게 달랐다. “거울은 내면과의 대화를 유발해 자의식과 감성지수(EQ)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게 최씨의 설명.

예절교육 전문기관인 대한항공 서비스아카데미. 주 실습실은 3면이 거울로 된 ‘자세교정실’. 거울로 뒷모습과 옆모습까지 확인하면서 표정관리, 인사, 워킹 등을 연습한다. 스튜어디스 출신 강사 백광숙씨(31). “거울방에서는 굽은 어깨, 제껴진 턱 등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내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예쁜 자세를 갖추는데 거울방만큼 좋은 곳은 없다.”

일본의 전화 교환원들은 상냥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부스 앞에 손거울을 놓고 전화를 받을 정도.

▼거울 산업▼

화장거울 욕실거울 현관거울 자동차미러 쇼윈도 잠망경 의사경 도로 모퉁이의 볼록거울, 카메라 속 거울, 태양열발전소, 태양빛을 지구로 쏘아주는 우주거울, TV브라운관, 거울로 둘러싸인 건물…. 거울산업은 현대문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산업이다.

물좋은 카페를 만들기위한 화장실 꾸미기도 붐. 서울 강남구 청담동 ‘그랜드하바나’의 매니저 이진씨(29). “화장실은 더이상 더러운 곳이 아니다. 화려한 꽃병과 그림, 몸전체를 구석구석 비춰주는 커다란 거울은 필수다.”

첨단 오피스건물의 유리창과 로비벽면, 엘리베이터안은 거울로 장식되는 것이 특징. 건축가 서현씨. “거울은 건물에 깨끗한 이미지를 심고 단열재로서의 효과가 크다. 그러나 도심에서의 거울벽면 건물은 비출 주위환경에 따라 이미지가 크게 달라진다.”

백화점 여성 옷매장의 거울은 좁고 긴 것이 특징. 보다 키가 크고 날씬해 보이기 위한 전략. 액세서리가게에도 대형거울은 필수. 전체 코디를 중요시하는 여성들이 작은 소품이라도 몸전체를 거울에 비춰보고 사기 때문.

평균 120도를 볼 수 있는 인간의 시야는 시속 1백㎞ 상황에서는 30도 정도에 불과. 이 때문에 자동차의 미러는 중요한 운전보조장치. 최근 그랜저XG에는 미러의 사각을 없애고자 곡률이 다른 두장의 거울로 된 ‘와이드뷰 미러’를 부착했다.

▼마음의 거울▼

거울의 이미지는 쓰임새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 슈퍼마켓에 설치된 거울은 ‘감시’, 사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의 끝없는 자기복제는 ‘공포’, 거울 속의 나를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라고 노래한 시인 이상(李箱)에겐 ‘자아분열’, 백설공주의 마녀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 나르시스에게 거울은 ‘자기애(自己愛)’, 명심보감(明心寶鑑)은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다.

서울대 정신과 류인균교수는 “거울을 보며 자기 외모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겪을 확률이 높다. 외모보다는 내면,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비춰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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