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딩크족에 피임약 잘팔린다…올110억원대 팔릴듯

입력 1998-09-13 19:06수정 2009-09-25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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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열달째인 초보주부 박모씨(26). IMF한파에 신혼의 단꿈은 날아갔다. 중소무역업체에 다니던 남편의 실직으로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박씨가 홀로 생계를 꾸려간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축복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감이 떨어진다”며 콘돔 쓰기를 꺼렸다. 고민하던 박씨는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피임강좌를 들은 뒤 먹는 피임약을 복용 중. 박씨는 “넉달 동안 사용해보니 불규칙했던 생리도 일정해지고 무엇보다 임신 걱정에서 해방돼 좋다”고.

먹는 피임약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부작용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지지부진하던 피임약의 국내 판매는 95년 70억원에서 96년 78억원, 97년 94억원으로 꾸준히 증가.

올들어 딩크(Double Income No Kid:아이를 갖지 않는 맞벌이부부)족을 강요하는 경제상황이 맞물려 먹는 피임약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관련업계는 올해 매출이 1백1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

국내 경구용(經口用) 피임약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한국쉐링의 한 관계자는 “잡지광고에 안내책자를 보내준다는 쿠폰을 끼워넣으면 지난해 매달 1백50여장의 신청이 왔으나 올들어 월 5백장 이상이 쇄도하고 있다”고 설명. 또 여대에서 피임법안내 자리를 마련하면 2,3년전과 달리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 구체적으로 질문해온다고.피임약 판매가 늘었다지만 우리나라 가임(可姙)여성의 복용률은 2.7% 정도. 독일(30%) 미국(15%)은 물론 말레이시아(12%)보다 훨씬 낮다.

자궁내장치나 난관수술 역시 손쉬운 피임법이 아닌만큼 우리나라 여성의 피임실패율은 매우 높다. 시장조사전문회사인 AC닐슨코리아가 지난해말 5대 도시의 여성 1천3백1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혼여성의 47.6%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경험. 게다가 비계획 임신 경험자 중 88.3%는 인공유산을 한 것으로 응답. 결국 피임약복용은 유산의 고통을 덜기 위해 여성이 선택하는 현실적 방법일 수 있다. 남성의 콘돔과 달리 성병에는 무방비지만.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의 저자 전여옥씨(39·리마쥬프로덕션대표)는 “피임약은 여성 스스로 라이프사이클을 조절하고 남성중심의 경쟁사회에서 성취를 돕는 효과적 수단”이라고 주장. 생식능력을 아예 없애는 불임수술과 달리 사회적 상황에 따라 언제 아이를 가질 것인지 선택권을 줬다는 얘기다.

요즘 약국에서는 9천∼9천5백원(1개월분)의 고급 피임약이 잘 나간다. 60년대 처음 피임약이 개발됐을 당시보다 호르몬 함량을 40배 이상 낮춘 제품이라 정상인에게는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순천향의대 산부인과 이임순교수는 “복용초기 구토증 두통 주기중간출혈 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 석달 안에 사라진다”고 설명. 불임 기형아 등에 대한 우려는 사실무근. 간 방광 등에 문제가 있거나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유방암 자궁암 환자와 과도한 흡연자 등은 복용을 피해야 한다.02―222―6528∼9

▼ 한국쉐링 여성건강관리팀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피임약 마케팅!

국내 최대의 피임약 업체인 한국쉐링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여성건강관리팀은 5명 전원이 23∼29세. 이 중 세사람이 미혼이다. 4명이 약사.

팀장 차마리씨(29)는 “단지 피임약을 파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 권익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고 열변. 업무목표도 단기적인 매출증대보다는 교육과 홍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피임약을 선전하다보면 웃지 못할 일도 많다.

‘부작용이 없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는 의심스런 눈초리에 자신있게 대처하기 위해 석달 이상 피임약을 시험복용하기도. 피임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부작용이 없다는 걸 몸소 증명하기 위한 프로다운 행동이다.

팀원 안지영씨(26)는 “항상 피임과 성문제에 열성을 보이니까 친구들로부터 ‘쟤 처녀 맞느냐’는 식의 엉뚱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며 웃음. 팀원끼리 저녁 회식을 하며 업무 얘기를 할 때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목소리를 낮추는 것도 종종 겪는 일.

〈김홍중기자〉kima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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