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같은삶 살아보니 「부드러운 감옥」…이경임씨 시집내

  • 입력 1998년 3월 9일 07시 38분


“80년대 문인들은 그래도 자기가 무엇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지 분명히 알았지. 90년대는 물컹물컹한 스펀지를 상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 같아. 일상이 마치 젤리처럼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휘감고 있어.”

무엇과 맞대응해야 할지도 모호해져 버린 90년대, 문인들은 이런 넋두리를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신예시인 이경임, 그는 그 일상성을 ‘부드러운 감옥’이라고 부른다.

“탈출할 수는 없더라도 감옥 안에서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이 지켜지는 것, 그것을 위해 애쓰는 삶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요.”

조금의 몽상도 없이 그는 아이들에게 삶이란 무지개를 좇는 것이 아니라 ‘감옥을 뜨개질하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아기나무가 엄마나무에게 물었답니다/나는 왜 새나 바람이나/구름이나 햇살이나 물이 될 수 없나요/너는 날마다 키가 크는 감옥이야/아무나 그런 감옥이 될 수는 없단다.’(‘동화가 있는 풍경’중)

살아가는 일이 곧 ‘감옥’이라는 극단적 시선. 그러나 그는 이런 현실이 못마땅하다고 찌푸린 얼굴로 살아가거나 목청을 높이지 않는다. ‘…牛神(우신)이 싸놓은 똥을 위해/똥의 역사와 똥의 미학 똥의 시를 쓰는’ 쇠똥구리에 자신을 비유하면서도 마지막 순간 ‘…그러나 나는 일생 愚神(우신)의 똥이 되지 않는 쇠똥구리 한마리’(‘자화상’중)라고 스스로의 존엄을 확인한다. ‘난 어디에도 갈 수 없잖아요’라고 보채는 아기나무에게도 그는 감옥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길을 얘기하지 않는가.

‘…넌 의자도 될 수 있고, 책도 될 수 있고/피아노도 될 수 있고,조각품도 될 수 있단다/…/나중에 그런 것들이 되어보렴/오랫동안 한곳에/생각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세상의 무수한 갈랫길들이/환하게 보인단다, 그때에는/넌 어디에나 갈 수 있을거야.’

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으로 등단하기 전까지 그는 그저 ‘망가진 안테나같은 더듬이’로 세상을 읽으려 시도해 보는 주부였다. 그러나 신세를 한탄하는 ‘눈물’도, 끊임없이 다른 세상을 엿보는 ‘창문’도 만들지 않고 오히려 삶을 ‘부드러운 감옥’으로 뜨개질하는 방법을깨우치며살았다.그는 여전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흑백논리로 말하자면 사는 것이 싫어지면 죽음을 택해야겠지요. 그러나 죽지 않겠다면 죽을 만큼의 힘으로 진지하게 살아야겠지요.”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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