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키스에 대하여 ▼
내가 난생 처음으로 바라본 바다였다
희디흰 목덜미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달려오던 삼각파도였다
보지 않으려다 보지 않으려다 기어이 보고 만 수평선이었다
파도를 차고 오르는 갈매기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수평선 너머로 넘어지던 순간의 순간이었다
수평선으로 난 오솔길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난 해당화
그 붉은 꽃잎들의 눈물이었다
정호승(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중에서)
누구는 그의 시를 절망이라고 하고 누구는 그의 시를 희망이라고 한다. 누구는 그의 시에서 ‘맹인가수 부부’의 기다림을 보고 또 누구는 사랑이 끝난 뒤 뒤돌아선 인수봉의 허허로움을 본다.
정호승의 베스트셀러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창작과비평사).
허기지고 갈 곳이 없어 삶의 모퉁이에서 서성거리는 요즘, 그의 시가 새삼스레 가슴을 적신다. 나직한 목소리로 ‘희망이 없어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들려주는 듯.
유신과 80년대 ‘낮은 데’ 사는 사람들의 시린 삶에 따뜻한 체온과 시선을 나눠온 시인. 자아의 고통과 절망에 보다 가라앉아있는 이번 시는 역설적으로, ‘절망으로 절망을 찔러 틔우는 희망의 싹’을 노래하고 있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