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소설 「홍어」]집떠난 가장 기다리는 모자얘기

  • 입력 1998년 2월 9일 07시 58분


작가 김주영(59)은 스스로를 ‘떠돌이’라고 부른다. 환갑에 접어든 나이로도 잠재워지지 않는 유랑의 피. 진정한 사내들의 삶이란 저 산너머에 있다고 믿는 소년처럼 그는 아직도 낯선 바람냄새 한줌에 전율을 느낀다. 언제부터였을까.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무작정 떠나게 된 것은…. 기억의 터널 저편을 향한다. 앞도 뒤도 산이 첩첩인 고향 경북 청송, ‘떠나야돼, 언젠가는 이 집에서 떠나야돼’라고 신열에 들뜬 눈으로 바깥세상을 꿈꾸는 소년시절의 그가 있는 곳…. 지난 한 해 동안 숨죽이고 써왔던 장편소설 ‘홍어’(문이당)는 그 기억의 물레를 돌려 자아낸 것이다. 함박눈이 어른 허리높이까지 내려쌓인 50년대의 어느 겨울. 간통사건으로 야반도주한 가장을 기다리는 삯바느질꾼 어머니와 외아들 세영이 사는 집에 거렁뱅이 여자가 숨어든다. 여자는 어머니가 집 떠난 아버지의 상징으로 고이 모셔둔 마른 홍어도 밤새 먹어치운 후다. 그러나 매섭게 회초리를 내리치던 어머니는 “하찮은 짐승도 구멍을 두고 내쫓으라 캤는데…”라는 핑계로 여자를 받아들인다. 눈과 함께 온 그 여자 삼례.‘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며 사는 큰 새’, 홍어를 먹어치운 배짱대로 그는 소라고둥처럼 붙박여사는 세영모자와는 다른 종자다. 거짓말, 도둑질, 술집작부들과의 내왕 등 그들 모자에게는 목숨같은 금기를 대수롭잖게 허물어댄다. 그러나 삼례의 일탈을 지켜보는 세영모자에게는 ‘고통을 통한 파괴적 쾌감’이 스멀스멀 자란다. 끝내 제 팔자를 속이지 못하고 삼례가 다시 밤도망을 한 뒤 남편이라는 사내가 찾아오고 그가 떠나자 이번에는 삼례가 읍내 술집작부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사람이란 염치를 먹고 사는 짐승”이라며 삼례에게 언젠가 아버지를 찾아나설 때 쓰려고 모아둔 돈을 쥐어줘 마을을 떠나게 한다. 체면보다 더 급한 것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삼례를 향한 흔들림이었다. 아이 업은 여자가 세영모자의 집을 찾은 것은 그 얼마 후. 여자가 버리고 떠난 젖먹이는 세영의 아버지가 바깥에서 낳은 아들이었고 아버지의 귀가를 알리는 전조였다. 아이를 거두어들이고 새색시처럼 집안팎을 닦아대며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온 이튿날 아침, 눈밭에 신발을 거꾸로 돌려 신은 발자국만 남기고 집을 떠난다. 오래전 삼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행방을 밝히지 않으려는 부재증명만을 남긴 채. ‘어머니는 어째서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아버지의 환상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놀랍게도 그것은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어머니의 지순했던 자존심은 오히려 굴욕으로 손상되고 말았고 슬픔에 찌들어가면서도 담금질해왔던 사랑의 열매도 한낱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일가. 그래서 어머니는 굴욕보다 더욱 격정적인 세상으로부터의 모험을 선택한 것일까.’ 바람난 암코양이처럼 밖으로 나도는 삼례를 회초리가 부러지도록 모질게 단죄했던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작부가 된 삼례를 떠나보낸 뒤 “나도 삼례를 따라 떠나고 싶었데이. 몸은 개천에 빠져 있는데, 마음은 항상 구름과 같이 떠다녔제…”라고 어린 아들에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이제 노년에 접어든 어린 아들의 분신, 길 위에서 세월을 견뎌낸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도 그것이었으리라. “떠남과 붙듦이 애잔하게 얽혀있는 것, 그게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홍어’는 천천히 읽어야 한다. 하고싶은 말이 있어도 곧장 내지르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옛사람의 표현법, 그 은유와 뜸들임의 미학을 작가가 고수의 솜씨로 재생해냈기 때문이다. 눈위에 찍힌 발자국이 아름다웠던 것이 언제였던가. ‘삼포가는 길’과 ‘혜자의 눈꽃’…. 여기 ‘홍어’의 흰발자국 하나가 더해진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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