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 배제된 서울,그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서…

  • 입력 1997년 12월 20일 08시 07분


서울역에서 숭례문(남대문) 시청 광화문을 지나 세종로 경복궁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시민이 몇명이나 될까. 거의 없으리라. 번잡하고 피곤한, 인간미와는 동떨어진 공간, 이것이 거대도시 서울이다. 감히 접근할 수도 없는 시청 앞 광장이며 그곳의 박제화된 분수대, 삶을 밀어낸채 황량하기 짝이 없는 여의도광장, 자유롭게 드나들기도 어려운 국회의사당, 차들만이 질주하는 한강 다리, 소비적인 공간 강남 등. 이곳들의 공통점은 인간성과 자연이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는 서울의 도시 공간이 정치 권력과 자본에 의해 통제당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청앞 광장엔 행정편의주의가, 여의도 광장엔 독재정권의 권위가, 국회의사당엔 한국정치의 후진성이, 한강 다리엔 통제된 자연이, 강남 곳곳엔 자본주의의 끝없는 소비 관성이 남아있을 뿐이다. 모순은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서울 전체를 위기의 공간으로 몰아가고 있다. 교통 환경문제는 물론이며 전통공간이 사라지고 거대하고 획일적인 건축공간을 양산하고 있다. 서울의 공간 왜곡은 우리 근현대사의 기복 굴절과 그대로 맞물려있다. 개화기의 충격, 일제의 식민지배를 거친 서울은 60년대 이후 심각한 왜곡을 경험했다.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김백영연구원(사회학)은 『서울 도심지의 공간적 구조는 정권의 반민주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진단하고 『5.16이후 80년대까지, 독재정권은 서울 시내 한복판의 구조를 비민주적 비참여적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한다. 개방적이기보다는 폐쇄적인 공간, 실용적이기보다는 거대하고 삭막한 공간, 대중적이면서도 민족적인 전통문화를 배제한 거리공간이 늘어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외형적인 고도성장으로 재벌이 주도하는 서구추종적 소비적 획일적 거대 건축공간이 도시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 그늘에 가려 대중적인 작은 공간은 빛을 잃어갔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서울은 현재 중병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통 환경문제 비인간화 자연상실 등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한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교통문제에 관해 김기호 서울시립대교수(도시공학)는 업무공간과 주거공간의 격리가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이동거리가 멀다보니 차량이동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도심 인구가 심야에 외곽 주거지역으로 모두 빠져나감으로써 도심의 공동화(空洞化)현상을 초래, 치안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외에 도심의 충실한 인프라를 밤시간대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희 서울시립대교수(도시행정)는 다핵(多核)중심이 아닌 단핵(單核)중심의 도시개발을 교통문제의 한 원인으로 지적한다. 최교수는 『최근 서울의 직장인구가 강남 영등포지역 등으로 분산되면서 도심 직장인구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종로구 중구 등 도심을 통과하도록 지하철을 건설함으로써 오히려 인구의 도심유입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족한 녹지공간 보행공간은 비인간화의 대표적인 경우. 김기호교수는 『보행공간이 좋아야 대중교통이 활성화된다』면서 『서울 도심의 경우 웬만한 도로는 보행전용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처방한다. 역사적 전통 공간의 위축 역시 심각한 문제다. 김교수는 도시 공간을 물질적 욕구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위압적 권위적인 건축 양식도 개선해야 할 대상이다. 특히 80년대 아시아경기와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이러한 양상이 심화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시 위주의 도시계획이 도시공간의 자연성 인간성을 얼마나 파괴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서울을 살리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이 내놓는 공통된 대안은 바로 한강의 부활. 한강은 서울의 상징인데도 지금 모습은 인간과 자연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기 때문. 여유롭게 걸어서 건널 수 있는 한강 다리 하나 없고 강을 따라서 줄지어선 고층아파트는 도시를 더욱 삭막하게 만든다. 건축가 김석철씨는 『서울 도시구조의 개혁을 위해선 한강이 도시의 주된 흐름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존의 공공시설과 문화시설을 한강변으로 닿게해 한강을 서울의 중심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그동안 소외됐던 한강을 새로운 도시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은 원래 산과 강과 도시와 건축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 공간이었다. 한강의 부활은 서울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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