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의 상상력,화폭에 머리 풀다…정탁영화백,첫 개인전

  • 입력 1997년 11월 14일 07시 43분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을 평가한다는 것이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일까. 정탁영화백(60·서울대동양화과교수)은 아직 한번도 개인전을 열지 않은 작가다. 그러던 그가 환갑의 해에 마침내 용기를 냈다. 13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문예진흥원미술관(02―760―4500)에서 개막된 그의 첫 개인전. 국전에 출품을 시작했던 서울대미대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40년만의 전시회다. 『책임질 수 있는 작품을 내놓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동안 뜻한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았어요』 전시작품은 2백호가 넘는 대형작품 14점과 소품 등 모두 18점. 수묵작업을 통해 추구해온 「잊혀진 것들」시리즈. 대형화면에는 먹이 번지고 그 사이사이 흰 반점이 널려 있다. 반점들은 마치 떼지어 날아 오르는 흰 새들 같기도 하고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같기도 하다. 그는 『빛 소리 형체 정감 등의 교감을 나름대로 그리고 싶었다』며 『예술이란 마음속의 상상력을 넓혀 이를 표현해 나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업기법은 독특하다. 먼저 마대위에 먹물을 바르고 다시 먹과 물로 화면위를 헤엄치고 다닌다. 그다음 조각난 종이들을 뿌린다. 종이조각위에는 먹이 완전히 스며들지 않고 흰반점이 생긴다. 이를 여러차례 반복하면 화면에 다양한 생성의 변화가 온다. 서울대미대를 졸업한 60년 전후 그의 작업은 인물 산수 등 사실묘사였고 이후 수묵을 주조로 한 실험기법을 보였다. 70년대이후는 종이 마대 삼베 바느질 등을 통해 다양한 조형작업을 시도했다. 80년대들어 그는 번짐과 스밈 등 먹의 실험을 통해 다양한 표현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이같은 그의 개인적인 회화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 정화백은 『수묵을 주조로 동양의 회화사상과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론가 오광수씨는 수묵의 깊이에 대해 평가했다. 그는 『정화백만큼 오래도록 수묵이 지니는 독특한 여운을 추구해온 작가도 없을 것』이라며 『이는 수묵이 지니는 깊이의 행간에서 투명한 의식을 추적해온 작가의 자기성찰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전시회는 19일까지 계속된다. 〈송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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