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연극제 폐막]외국작 히트-국내작 참패

  • 입력 1997년 10월 15일 07시 51분


「97 세계연극제 서울/경기」가 15일 막을 내린다. 45일간 서울과 과천에서 26개국 1백13개 연극 무용이 선보인 이 연극제는 우리 문화계에 어떤 빛과 그늘을 남겼을까. 당초 세계연극제가 기대했던 목표는 우리 관객들에게 국내외 빼어난 작품을 통해 공연을 보는 기쁨을 선사하고 우리 연극수준을 세계에 알려 서울을 연극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주최측의 자체평가는 「절반의 성공」. 국내 관객들에게 연극의 힘과 감동을 안겨주는 데는 성공했으나 우리 연극을 세계인에게 자랑하겠다는 주최측의 포부는 그야말로 「공약(空約)」이 되어버렸다. 우선 관객수를 보자. 국내외 우수작 초청공연 베세토연극제 서울연극제 세계마당극제 등 1백13개 작품을 관람한 관객수는 모두 30여만명. 이 가운데 환경과 생명을 주제로 30개 작품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과천 세계마당극제의 관객만 20만명이었다. 요란하게 차린 것만 많은 「서울 뷔페」가 짭짤하게 먹을 것만 올려놓은 「과천 된장찌개」에 밀린 셈이다. 서울 공연에 몰린 관객들도 대부분 외국작품에 관심을 보였고 「문화 충격」을 받았다. 그리스의 「안티고네」, 미국의 「트로이의 여인들」, 루마니아의 「페드라」, 베네수엘라의 「아무도 대령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마기 마랭무용단 공연 등 수준작이 이에 속한다. 연극평론가 김미도씨(산업대교수)는 『기계의 힘에 의해 갈수록 스펙터클화하는 영화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살냄새 나는 연극의 힘을 새롭게 일깨워 주었다』고 평가했다. 과천 세계마당극제측에서도 『그동안 고급문화로만 인식돼온 연극이 사람을 하나로 아우르는 놀라운 축제성을 지녔음을 확인했다』고 평했다. 이에 비해 국내 공연작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연극제 기간 중 내한했던 아비뇽 세계연극제조직위원장인 베르나르 다르시에는 『한국작품 중에는 세계인에게 감동을 안겨줄 작품이 없다』고 일갈했다. 유민영씨(예술의 전당 이사장)는 『대사전달이나 한물간 연극양식에 매달려 세계연극의 흐름과 동떨어진 모습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김윤철씨(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교수)는 『우리 연극인들에게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극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한계 때문에 국제극예술협회(ITI)세계총회 참가자들을 비롯, 세계인에게 우리 연극수준을 자랑하겠다는 야심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들 외에는 외국관람객도 거의 없어 「동네 잔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33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이번 연극제는 2억5천여만원의 빚과 함께 △자막처리 미비 등 관객서비스 부족 △전산망 티켓네트의 운용 실패 △지나치게 많은 참가작으로 인한 방만한 운영 등의 그늘을 남겼다. 정진수 세계연극제 조직위원장은 『순수 민간인들의 힘만으로 이만한 축제를 일궈낸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라며 이번 연극제를 거울삼아 내년 서울국제연극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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