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사람들/파키스탄 파탄족]굴복 모르는「戰士」

  • 입력 1997년 10월 2일 07시 28분


파탄? 요즘 유행하는 기업부도? 천만의 말씀. 파탄족은 파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차라리 현지발음은 「빠탄」에 가깝다. 푸슈툰, 푸크툰이라 불리기도 한다. 아프카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stan은 땅이라는 뜻. 옛 우리말로는 ‘당’이었다) 북서변경주의 주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종교적으로 이슬람 수니파. 대략 1천5백만명. 폐쇄적인 삶을 산다. 발루치스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주민들도 대부분 바로 이 파탄인들이다. 고대로부터 종교와 교역의 중심지 였던 페샤와르에 가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파탄족은 여러 하위집단과 씨족으로 나뉜다. 들판쪽에 사는 파탄족은 지극히 순종적이다. 대대로 그 지역의 패권자들에게 세금을 꼬박꼬박 내며 살아왔다.이와는 반대로 소위 트라이벌 에어리어(Tribal Area)라고 알려진 인더스강 서쪽, 험난한 산중의 파탄족 사람들은 반항적이고 독립적이다. 여태껏 한 번도 타민족에게 굴복한 적이 없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인 해발 1천80m의 카이버 패스를 중심으로 그들은 자유와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들의 땅을 지키고 모든 침략자들에게 맞서 싸우는 것을 영예로 알고 살아왔다. 호전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는 게릴라전사들이다. 이들은 산악과 계곡의 지형을 손금보듯 환하게 알고 있으며 모두 명사수들이다. 이들은 또 주변환경과 어울리는 카키색 옷을 즐겨 입는데 「카키(Khaki)라는 말은 그들말로 「먼지 덮인」이라는 뜻. 무굴 아프간 시크 영국 러시아 모두가 이들과의 싸움에서 무릎을 꿇었다. 파탄남자들에게 어떤 일이라도 잊혀지는 일은 없으며 갚지 않고 그대로 넘어가는 빚은 결코 없다. 아내를 모욕한 집안의 남자 7명을 죽인데 대해 상대편 보복으로 자기형제 1명이 죽은 것을 자랑스레 말하는 사람도 있다. 트라이벌 에어리어에는 다라(Darra)라고 불리는 소총공장도 있다. 여행자에게 총이나 「하시시」라는 마약구입을 권하는 경우도 흔하다. 총 한 자루에 미화 50달러. 사람 한 사람 죽이는 데는 현지 화폐인 파키스탄 돈으로 3백루피(1루피는 약 20원). 놀랍다. 단돈 6천원에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다니…. 이런 살벌한 동네에서 여자들은 어떻게 살까. 「부르카」라고 부르는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덮이는 「장옷」을 입고 평생 산다. 한여름 바깥 기온은 섭씨 40도가 넘고 습도는 90도를 웃도는데 부채질도 못하고 눈부분만 빠끔히 뚫린 감옥 아닌 감옥에 육신을 가두고 살아간다. 이들은 오로지 한 남자에게만 헌신하며 산다. 남편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아내를 두셋 더 둘 수도 있다. 그래도 시기하거나 다투면 안된다. 남자들과 한방에 기거하지도 않는다. 집은 남자들의 공간과 여자들의 처소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 혼자 외출은 꿈도 못꾼다. 남편이나 남자형제 혹은 어린 여동생(사춘기 이전의 여자는 그냥 어린아이일 뿐이므로)이 따라 나서야만 시장에라도 갈 수 있다. 물론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에 가 보면 온통 남자 상인들 뿐이다. 수를 놓는 것도, 야채를 파는 것도, 파키스탄인들의 주식인 난(둥글넓적한 밀가루 떡)을 굽거나 달콤하고 향긋한 우유차를 끓이는 것도 남자가 한다. 감히 불경스럽게 여자가 집안일 이외에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가는 당장 내쫓김을 당한다. 가문의 명예를 떨어뜨렸다고 공개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인 「개화의 거센 물결」은 여기서도 어쩔 수 없다. 요즘 파탄의 여인들 중에는 부르카 대신 얼굴을 훤히 내놓는 차도르를 걸친 멋쟁이 여인들도 눈에 띈다. 「인샬라」. 모든 게 알라의 뜻이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쪽에서 극단적 이슬람교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이 득세하면서 시대의 흐름과 정반대로 가는 경우도 있다. 여자들이 거리를 나다니면 채찍을 휘두르거나 남자들이 이슬람교기본원리에 따라 수염을 기르지 않으면 공무원의 경우 징계까지 서슴지 않는 것 등이 바로 그것. 그러나 이것도 「인샬라」 알라의 뜻.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연호택<관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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