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부모의 이혼은 커다란 충격이다. 특히 이혼을 죄악시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홀부모의 아이들」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 때문에 소외감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좌절감에 빠진다. 최근 이혼율이 결혼 6쌍 중 1쌍 꼴로 급증함에 따라 이혼한 홀부모 밑에서 자라는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수가 최소 7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卞化順·44)박사가 「97 사법연감」의 이혼통계를 근거로 분석한 수치로 전체 18세 미만 청소년(1천2백여만명)의 약 6%에 달한다. 부모의 이혼 때문에 고통받는 홀부모 자녀들의 실태와 해결책을 세차례로 나눠 싣는다.》
『엄마 죄송해요. 학교 가기가 싫어요. 엄마가 미워 이 길을 택했어요….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너무나 싫고 힘들었어요. 엄마 사랑해요…』
지난달 18일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 Y양(14·서울 K여중 2년)이 남긴 유서의 일부분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35·회사원) 조부모와 함께 살아온 Y양은 평소 내성적이긴 했지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던 조용한 학생이었다.
Y양은 그러나 쉬는 시간이면 늘 책상위에 엎드려 있거나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 않아 사정을 알지 못했던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왔던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서울 녹천중 김홍인(金洪仁)상담실장은 『홀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부모의 이혼 사실을 숨기기 때문에 아이가 문제를 일으킨 후에야 비로소 가정사정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네살 때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40·무직)와 함께 살고 있는 서울 J여고 2학년 L양은 최근 사귀던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고 숨겨온 L양은 남자친구와 가까워지자 부모의 이혼 사실을 솔직히 털어놨다.
그때 『우리끼리만 좋으면 그만이지 뭐…』라며 L양을 위로했던 남자친구는 최근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지자 『그것봐, 역시 이혼한 집 자식은 뭔가 문제가 있어…』라는 말을 불쑥 내뱉었다. 몇차례 죽을 결심까지 했던 L양은 이젠 그 누구에게도 부모의 이혼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함께 잘 놀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라는 한마디를 던졌을 때, 학급에서 누군가의 지갑이 없어졌을 때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던 씁쓸한 기억은 「홀부모의 아이들」이 한번쯤 경험했을 아픔이다.
한국여성개발원 양정자(梁貞子)부소장은 『홀부모의 아이들은 비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사회 전체에 뿌리깊게 박혀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을 정작 병들게 하는 것은 부모의 이혼 자체가 아니라 이혼 이후에 겪게 되는 애정결핍과 상실감, 소외감이고 이같은 사회분위기에 짓눌리게 되면 내성적으로 변해 가거나 정반대로 냉소적, 폭력적이 되기 쉽다는 것.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44) 오빠(16)와 함께 사는 서울 W여중 1학년 C양(14)은 최근 자폐증세로 학교를 그만뒀다.
내성적이었지만 심성이 고왔던 C양은 학교에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나 결석이 잦았다. C양이 학교 대신 찾은 곳은 자기집 2층 골방. 보험설계사인 어머니가 출근한 이후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결석이 잦자 담임이던 L교사(32·여)는 학급 아이들 모두에게 편지를 쓰게 한 뒤 작은 선물을 준비해 C양의 집을 찾았다. C양은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고 다시 학교에 나왔으나 얼마 못가서 자폐증세의 악화로 학교를 그만뒀다.
미국 프랑스 등의 경우 부모의 이혼은 숨기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로 구성된 「홀부모」(Single Parent)모임을 구성하고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부모의 이혼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해주고 있다.
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 홍강의(洪剛義)과장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홀로 된 아이들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이들을 위한 전문 프로그램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훈·부형권·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