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빠진 영상세대 「시네마키드」,시사회 단골손님

  • 입력 1997년 5월 23일 07시 52분


「1주일에 영화관람 일곱번, 일요일엔 스케줄을 짜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거나 집에 앉아 5편 이상의 비디오를 본다」. 김대영군(20·경희대 환경학과 2년)의 학생 수첩은 영화 시사회와 동호회 모임 일정으로 빼곡하다. 지난 19일엔 전공인 「환경학개론」시험이 있었지만 김군은 2시간짜리 시험을 1시간만에 후딱 해치우고 시사회장으로 달려갔다. 『영화는 맘먹었을 때 봐야지 한번 놓치면 비디오로 나올 때까지 못보게 되거든요』 김군과 같은 「시네마 키드」는 요즘 보통 20대 청년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TV가 보편화한 70년대에 태어난 세대다. 초등학교때부터 아빠 엄마와 함께 TV 「명화극장」에 넋을 잃기 시작해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처음 극장을 찾았고 이젠 조금이라도 먼저 영화를 보려고 시사회장에 간다. 「영상세대」인 이들이 영상문화의 가장 세련된 결정체(結晶體)인 영화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책을 읽는다 해도 주로 영화잡지다.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제연구소에 근무하는 마니아 윤정아씨(27)의 주장은 당당하다. 『기성세대는 왜 자녀가 책을 보면 기특해하고 영화를 보면 상을 찌푸리죠? 책에 있는 것은 모두 영상매체로도 배울 수 있어요. 오히려 더 생생한 지식과 경험이 될 수 있죠』 「영화 마니아」는 수도권에만 1만∼2만5천명이 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국내 최초로 예술영화전용관을 만든 영화사 「백두대간」이 지난 3년동안 「이레이저 헤드」 등 난해한 예술영화 20편의 관객수를 집계한 결과다. 이들 마니아는 영화관계자들에게 「미운 오리」이면서 「무서운 아이들」이다. 시사회에 주로 다니기 때문에 흥행인파 합산이 안되는 공짜 손님들이지만 이들의 평가가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 단순한 관람자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하이텔 동호회 「비주얼 영상모임」은 한국영화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다. 『정부나 어른들이 손놓고 있는 일을 우리가 할 겁니다』 시솝 이철환씨의 말이다. 「하이텔」에만 5개이상, 한 동호회당 2천∼6천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PC통신 영화동호회들은 각자 「필름 라이브러리」를 갖고 있다. 외국에 나가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영화의 레이저디스크(LD) 등을 사다가 직접 번역을 하고 자막을 넣어 한달에 한번 정기상영회를 연다. 캠코더를 갖고 직접 영화를 만드는 소모임도 늘고 있다. 집단행동도 한다. 「에비타」의 입장료를 7천원으로 올리겠다고 하자 PC통신에서는 「불매 서명운동」이 일어나 철회시켰고 케이블TV Q채널이 주최한 「다큐멘터리영상제」에서 「태평천국의 문」이 빠졌을 때도 여론이 들끓었다. 올들어 개최된 영화제는 모두 초만원을 이뤘다.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는 뜻밖에 팬들이 엄청나게 밀려와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으며 시민영화축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말 밤새껏 열린 「장 뤽 고다르의 밤」에는 수천명의 팬들이 오후6시에 모였다가 표가 부족해 일단 돌아갔는데 밤12시가 되자 다시 몰려와 주최측은 상영횟수를 늘리기도 했다. 평론가 강한섭교수(서울예전)는 『젊은이들의 영화에 대한 열기는 평론가인 내가 의아할 정도다. 그러나 고급인력들이 영화계로 들어오고 팬들의 층이 넓고 깊어질수록 한국 영화계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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