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세상」의 책읽기 보수-복고풍으로 간다

  • 입력 1997년 5월 22일 08시 09분


「영웅얘기냐, 사랑찾기냐, 그도 아니면 마음수양이나 할까」. 최근 문학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로 거론되는 책들이 드러내는 독서경향이다. 「람세스」 「인간의 길」은 초인적 영웅이야기, 「사랑의 기쁨」 「하얀 기억속의 너」는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순애보. 시로는 유일하게 베스트셀러로 명함을 내밀고 있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명상서적붐을 일으킨 류시화씨 작품이다. 「영웅」 「사랑」 「명상」이 인기를 얻는 것은 최근의 사회동향과 톱니처럼 맞물려 있다. 고대 이집트제왕 람세스2세의 일대기를 그린 「람세스」와 박정희전대통령을 모델로 한 「인간의 길」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난세를 평정하는 카리스마적 인물을 그렸다는 것. 출판가에서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통치권 공동화(空洞化)현상이 영웅이야기의 융성을 가져왔다고 풀이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한발 더 나아가 「람세스」 「인간의 길」 「아버지」 「선택」의 베스트셀러진입은 『우리사회에 가부장적 질서로 회귀하려는 심리가 점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독재통치가 붕괴된 80년대 후반 이래 우리 문학의 화두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절대권력 부정이었다. 페미니즘문학의 융성이 그 두드러진 예다. 그러나 「람세스」 「아버지」 「선택」의 인기는 그토록 부정돼왔던 가정과 사회에서의 가부장의 권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음을 뜻한다』 「하얀 기억속의 너」 등 순애보를 다룬 소설은 곧잘 시청률최고를 기록했던 TV드라마 「첫사랑」과 비교된다. 특히 80년대초 「나 이제 너를 잊으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던 자전소설을 개정증보한 「하얀 기억…」는 줄거리가 첫사랑을 못잊는다는 내용인데다 소설속에 그려지는 시대나 감성도 70년대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의 저자 류시화씨를 정점으로 하는 명상류서적들은 복잡한 세상사에 흔들리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권한다. 류씨는 「외눈박이…」외에도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자신이 기획 번역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성자가 된 청소부」 등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예측불허의 시대에 독자들의 불안감을 가장 잘 읽어내는 작가」로 꼽힌다. 출판사들은 영웅 순애보 명상류서적의 베스트셀러점거로 드러나는 독자심리가 결국 「시 소설 읽으면서까지 고뇌하고 싶지않다. 위안과 감동을 원한다」라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작가들은 『가뜩이나 불황인데다 「안정지향」의 독서심리까지 겹쳐 출판사들이 신인창작집이나 대중성 낮은 작품 출간을 꺼리고 있다』고 한숨을 내쉰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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