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 탐구자들」,日「문화약탈」 맞선 사람들 그려

  • 입력 1997년 2월 26일 20시 15분


[정은령기자] 「예술이 위대하다는 것은 조선민족이 미에 대한 놀랄만한 직관의 소유자임을 의미한다. 나는 그 예술을 통해 조선에 바치는 깊은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예술적 소질이 풍부한 그 백성이 지금 추한 힘(제국주의 일본)때문에 고유의 성질을 방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나는 그 세계의 손실에 대해 방관할 수 없다…」. 일제의 강압 통치가 한창이던 1920년 발표된 이 글은 일본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가 쓴 것이다. 최근 발간된 「조선미의 탐구자들」(학고재 간)은 야나기처럼 일제하에서 한국의 미술유산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인물들과 그로 인해 보존될 수 있었던 문화유산을 소개했다. 조선미술에 심취해 조국에 등을 돌리기까지했던 일본의 이른바 「민예파」미술가들, 「조선미술사」를 저술한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등 구미출신의 조선미술애호가들, 사재를 털어 고미술품을 지킨 한국인소장가 수정 박병래, 간송 전형필씨(1906∼62) 등이 그 주인공이다. 저자 한영대씨(58)는 재일교포 미술사학자. 수록된 글들은 한씨가 『민족자긍심을 일깨우기 위해』 일본의 영문잡지 「코리아연구」에 84년부터 5년간 연재했던 것이다. 식민지하에서 한국미술지키기에 나섰던 일본예술가들중 대표격인 야나기는 1924년 경복궁내에 「조선민족미술관」을 건립해 일본으로 헐값에 팔려나가는 고서화 도자기 그림 등을 수집했다. 해방이후 야나기는 수천점에 달하는 이 보물들을 한국정부에 고스란히 넘기며 『내가 모은 조선시대 도자기 한 점이라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장식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자신의 공을 애써 감추었다. 한때 일본으로 실려갔던 경천사지10층석탑(수리중)을 되찾아온 인물이 영국인 베델과 미국인 헐버트였다는 사실도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1907년 당시 궁내대신인 다나카 미스아키백작이 일본군의 총칼을 앞세워 경기 풍덕군 부소산자락에 있던 이 탑을 백주대낮에 강탈해가자 베델과 헐버트는 「코리아데일리뉴스」 등 영자지에 이를 폭로해 결국 일본으로부터 11년만에 「환수」항복을 받아냈다. 한국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전형필씨는 식민지치하에서 우리미술품을 지키는 것으로 무형의 독립운동을 한 인물. 특히 일본에 팔려나간 우리 미술품을 찾아오기 위해서는 조상대대로 물려내려온 수십억원대의 전답을 파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