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세상읽기]인생이라는 여행

  • 입력 1996년 12월 27일 21시 29분


『이번에 갈때는 좋은 카메라 가지고 가요』 『아니, 아예 비디오 카메라로 쫘악 찍어와요. 우리가 특집으로 멋있게 꾸며 줄테니까』 친하게 지내던 방송국분들은 곧 중국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한다. 생생한 영상기록이 귀한 자료가 되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혼자서 배낭메고 육로로 다니는 나에게 비디오 촬영은 여간 큰 부담이 아니다. 무겁고 부피가 커서도 그렇지만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고장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려가 늘 따른다. 게다가 언제어디서나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싸여 볼 것을 충분히 감상하거나 감동적인 순간에 푹 빠지기가 어렵다. 그러니 비디오 카메라가 여행에 도움은 커녕 방해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돈이 많은 것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호텔에서 묵고 고급식당에 가고 관광객 전용기차를 타면 현지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이름난 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거나 호화쇼핑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대중식당이나 3등 열차에서 진솔한 서민들과 어울리는 일이야말로 여행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알차고 멋진 여행을 위해서라면 돈이나 물건준비에 앞서 마음의 배낭을 잘 꾸려야 한다.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태도, 한나라의 문화나 풍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려는 마음가짐 등이 빠뜨릴 수 없는 목록이다. 나는 오지여행중 빈박을 하게 되면 그집 식구들과 똑같이 생활한다. 소피섞인 우유도 마시고 동물들과 사람이 함께 자는 숙사에서 빈대나 진드기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보면 차츰 인간적인 정이 오고 간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식구들이 나를 하루라도 더 붙잡아 두느라 신발이나 옷을 감추기도 하고 떠나는 날은 마을 전체가 울음바다가 된적도 여러번 있었다. 지난 4년간의 여행을 뒤돌아보면 이 사람들이 제일 먼저 머리속에 떠오르며 비디오 카메라에는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마음씀씀이에 가슴이 뻐근해진다. 여행은 농축된 인생이고 인생은 긴 여행길이라든가.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올가미가 되는」소유물이 아니라 「사람들과 얼마만큼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았는가」일 것이다. 여러분의 새해 희망은 어떤것인가. 무엇이던간에 만사형통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좀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위한 노력이었으면 좋겠다. 한 비 야<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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