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성의 세상읽기]아빠 「가장 명예퇴직」

  • 입력 1996년 10월 28일 20시 21분


지난 주 글에서 요즈음 어머니들의 비뚤어진 자식사랑 이야기를 했다가 은근히 비난을 받기도 했다. 늘 여성 편을 들어 온 내가 웬일로 어머니를 일방적으로 매도했느냐는 항의 섞인 비난이었다. 꼭 그래서뿐 아니라 오늘은 아빠들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우리 아빠들은 도대체 아이들 기르는 일에 너무 참여가 적다. 새벽같이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와서는 아이들이 무슨 애완동물인지 자는 아이들 머리나 쓰다듬는 정도이기 일쑤다. 얼굴 볼 시간이 없어 『아빠, 오래간만이에요』라고 인사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여전히 오래 일할 수밖에 없고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나 40대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나더라도 연습이 되어있지 않은 아빠들은 아이들과 어떻게 뜻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기껏해야 쉬는 날 미안한 마음에 놀이동산이다, 외식이다 돌아치다가 저녁이면 모두 힘이 빠져 허덕이는 상투적인 아빠노릇뿐이다. 그러니 점점 아이들과는 멀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덤덤한 관계에 머무르게 된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면 아예 아빠와의 관계는 표피적이고 서먹하게 된다. 이때는 이미 때가 늦다. 뒤늦게 아빠가 접근하려 해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먼저 몸을 사리게 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아버지들의 몫이 가정에서 줄어들고 「아버지 없는 시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오늘날, 자칫 돌이킬 수 없게 아버지와 아이들의 관계가 뒤틀어지는 것도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이제라도 아빠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간의 양보다 그 질로 승부해야 한다. 아이들과 긴 시간 내지 않고도 함께 할 수 있는 자기 몫을 정해 그것이 일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아이들 목욕시키는 일, 유치원이나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밖에도 아이들과 그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또 유치원이나 학교에도 꼭 가봐야 한다. 교육은 엄마 아빠가 함께 하는 것이다. 자칫 엄마에게만 교육을 맡겨놓은 듯한 인상을 주고 교육에 대해서는 나몰라라하다간 언제 엄마와 아이의 단단한 연대에 아빠만 소외될지 모른다. 이렇게 아이들에 대해 「늘 출장 중인 아빠」는 자칫하면 멀지 않은 앞날에 출장이 아니라 집으로부터 명예퇴직을 당할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아니 오늘이라도 일찍 퇴근하여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 정 유 성(서강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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