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조흥은행 이전 '잘못 낀 단추'

  • 입력 2002년 2월 7일 18시 35분


옷을 입다가 단추를 한 칸씩 밀려 채운 어린이에게 해 줄 이야기는 하나뿐이다.

“처음부터 다시 채우라”는 것이다. 애써 모른 척하고 나머지 단추를 계속 채우거나, 골치 아프니까 그냥 놔뒀다가 나중에 바로잡으라고 가르칠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현실에선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을 시인하고 바로잡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조흥은행 본점을 충청권으로 옮기는 문제가 그렇다.

98년 유동성 위기에 몰린 조흥은행은 공적자금 2조7000억원을 받으면서 경영정상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정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 각서에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1년 말까지 충청권으로 본점을 옮긴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전국적인 영업망을 가진 시중은행의 본점을 지방으로 옮긴다는 ‘이상한’ 발상은 당시의 정치적 배경을 모르고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 충청, 충북은행이 모두 퇴출된 98년 상황에서 당시 공동여당이던 자민련의 요구에 따른 결과였다는 것이 금융권 내 정설이다.

우여곡절을 거듭하던 본점 이전 문제는 올 3월 주총에서 가닥이 잡힐 예정이었지만 또다시 연기됐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6일 “조흥은행 지방 이전 사안은 대전 청주지역이 합의해 연말까지 결정하도록 했다”고 언급한 것.

왜 연말까지인지는 뻔하다. 대전 청주가 본점 유치경쟁에 나선 마당에 ‘승자’가 결정되면 다른 쪽에선 올 양대 선거 때 ‘감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조흥은행은 되도록 안 내려가고 싶어한다. “꼭 내려가야 한다면 총무 전산 등 비(非)영업부서만 옮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전이 이뤄진 뒤부터는 ‘본점 서울 귀환’이 조흥은행의 숙원사업이 될 것이다.

조흥은행 지방이전 결정은 정치논리가 경제를 왜곡할 때 어떤 후유증이 빚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선거의 해라는 올해에 또 다른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양산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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