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범 지숭호씨(25)가 3학년 5반 교실로 들어갔을 때 교내를 순시중이던 이영수(李榮洙·50)교무부장이 수상히 여겨 뒤따라 들어가서는 “왜 그러느냐”며 계속 말을 시켰다. 그 사이 학생 40명중 36명이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지씨는 황급히 이교무부장을 몰아내고 앞문을 잠근 뒤 흉기를 들고 뒷문을 막아섰다. 교실 앞쪽에 있다가 미처 피하지 못한 이승희(李承禧·35·여)교사와 김모양(18) 등 학생 4명이 인질로 잡혔다.
이교사는 학생들을 자신의 등 뒤로 몰아 넣은 뒤 “학생들은 해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심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이교사는 우선 범인을 자극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교사는 지씨가 고교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말하자 “농고 아니면 공고를 나왔죠”라며 대화를 유도했다. 지씨는 우연히도 이교사가 얼마 전까지 근무했던 모공고 출신이라고 대답했다. 이교사는 공고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다가 지씨가 “이혼한 아내가 데리고 간 네 살짜리 딸이 보고싶다”고 하자 자신의 딸도 네 살(실제)이며 남편과 가끔 헤어지고 싶을 때도 있다고 속에 없는 말을 했다.
지씨는 대화 도중 가끔 웃음도 터뜨렸고 시간이 지나자 들고있던 흉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경찰이 자신에게 건네준 빵을 “학생들에게 먹이라”고 하기도 했다.
지씨는 경찰에 검거된 뒤 “학생들을 보호하려고 애쓰고 따뜻하게 대화해준 이교사 때문에 한때 인질을 내보낼까도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충주〓지명훈기자>mhjee@donga.com
▼"떼인돈 찾으려 범행" 20대 영장▼
수업중인 여고 교실에 난입해 여교사와 여고생 등 5명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인 20대가 경찰특공대에 의해 6시간여 만에 검거됐다. 인질로 잡혔던 여교사와 여고생들은 무사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학교의 방범대책이 시급함을 드러냈다.
▽사건발생〓17일 오전 10시 5분경 수업중이던 충북 충주의 예성여고 3학년 5반 교실(3층)에 지숭호씨(25·충주시 엄정면 목계리)가 흉기 2개를 들고 침입해 교탁에 흉기를 꽂은 뒤 “수업은 끝났다”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씨가 행색을 수상히 여겨 자신을 뒤따라 들어온 이영수(李榮洙·50)교무부장에게 흉기를 들이대는 사이 학생 36명이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가자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승희(李承禧·35·여)교사와 학생 4명 등 5명을 인질로 잡았다.
학교측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는 한편 교실을 빠져나온 뒤에도 충격에 휩싸인 학생들을 병원으로 후송한 뒤 전교생을 귀가시켰다.
▽검거작전〓10분 후 경찰이 학교에 도착했다. 경찰은 전의경을 포함해 60명을 복도에 배치하고 틈을 노렸으나 지씨가 인질을 창문 쪽으로 몰아넣고 흉기를 들고있어 진입할 엄두를 내지 못냈다. 경찰은 지씨의 아버지와 여동생 친구 등을 데려다 대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경찰은 충남경찰청 소속 경찰특공대 5명이 도착하자 대화를 하며 지씨를 방심하게 한 뒤 오후 4시 5분경 섬광탄(스턴트탄)을 터뜨리며 들어가 7초 만에 범인을 검거하고 인질을 구출했다.
▽범행동기〓지씨는 경찰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조모씨가 승용차를 할부로 사준다고 해 어렵게 번 돈 500만원과 인감증명 등 서류를 떼어주었는데 자취를 감춰버려 1년여 동안 찾아 헤맸다”며 “인질극을 벌여 그를 불러오게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18일 지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충주〓지명훈기자>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