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결국 총선용 '병풍(兵風)'이었나

  • 입력 2001년 2월 13일 18시 58분


검찰과 국방부의 병역비리 합동 수사반이 비리 관련자 327명을 적발해 사법처리하고 해체되었다. 합수반이 지난해 2월 반(反)부패국민연대로부터 지도층 인사의 자제로 병역비리 의혹을 받는 210명의 명단을 넘겨받아 수사에 착수한 지 만 1년 만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던 정치인 자제에 대한 수사는 소리만 요란했지 성과는 거의 없다. 그래서 당시 야당이 제기했던 ‘총선용 수사’라는 주장이 사실상 입증된 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숫자상으로 드러난 수사 성과는 그리 빈약한 것이 아니다. 합수반은 500여건에 달하는 총 1750여명의 비리 관련자를 조사해 이중 327명을 적발했다. 327명 안에는 병역 면제와 관련해 금품을 준 사람 168명, 그리고 전직 및 현직 병무청 직원 79명을 포함한 알선 브로커 134명, 전현직 군의관 25명이 걸려들었다.

또 이를 계기로 1급 이상 공직자들의 병역을 공개토록 하는 법률도 제정되고 대부분의 병역 비리가 병무직원과 상설신체검사장의 군의관들이 손을 잡고 저지르는 것이라는 사실도 확인되어 다각적인 개선책이 마련된 것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시민단체측이 의혹을 제기할 때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정치인 자녀의 병역비리문제, 그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는 단 두명만이 문제가 되었을 뿐이다. 한나라당 김태호 의원이 불구속 기소되고, 서울 시의회의 김길원 의원이 구속되는 정도로 끝났다. 합수반은 대부분의 정치인이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하기 어려웠다고 변명한다. 또 ‘정치인 수사가 용두사미(龍頭蛇尾)식으로 미흡했다고 비판해도 할말이 없다’고 자인도 한다는 보도다.

시민단체가 자료를 청와대에 제공하고, 이어 대통령의 특별한 ‘주문’을 받아 합수반이 구성됐다. 합수반이 병역비리를 파기 시작한 지난해 2월 중순이라는 시점은 바로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정확히 두달 앞둔 때였다. 그런 만큼 야당은 수사의 타이밍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총선을 치르고 나서 수사하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총선 일정에 관계없이 엄정 수사한다. 비리를 정치적으로 고려하라는 말인가’라는 논리로 반박했다. 그러나 태산명동(泰山鳴動)의 기세로 시작된 수사는 단 두명의 사법처리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과연 당초 검찰이 호언하던 대로 엄정한 정치인 수사라고 지금도 우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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