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유재동 부국장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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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두 전해드립니다.

jarrett@donga.com

취재분야

2026-03-11~2026-04-10
칼럼91%
인공지능3%
경제일반3%
금융3%
  • 납세기피 GE, 거짓 보도자료에 ‘한방’ 먹다

    ‘많은 국민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이때 우리는 얼마 전 받았던 32억 달러의 세금 환급분을 국가에 반환하기로 했습니다. 국가에 기여하고 업계에 본보기를 제시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13일 AP통신에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로고가 새겨진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가 e메일로 전달됐다. AP통신은 이를 근거로 기사를 작성해 뉴스 전송계약을 맺은 전 세계 언론사에 타전했다. 하지만 이 자료는 가짜였다. ‘예스멘(Yes Men)’과 ‘유에스 언컷(US Uncut)’이라는 시민단체들이 GE에 망신을 주기 위해 만든 거짓 보도자료였다. 거액의 수익을 내면서도 세무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법인세 납부를 피해가던 GE는 최근 “정부에 32억 달러의 세금환급까지 요청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더욱 궁지에 몰렸다. GE는 보도내용을 즉각 부인했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GE의 절세 노력은 국민적 공분을 샀다. 보도자료가 거짓임을 알게 된 AP통신은 전송 30여 분 만에 기사를 황급히 삭제하고 정정기사를 실었다. 두 단체는 가짜 보도자료를 낸 이유에 대해 “GE는 2005년 이후 280억 달러라는 수익을 올렸는데 이에 따른 세금은 한 푼도 안 내고 있다”며 “이는 법적으론 문제없을지 몰라도 부도덕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우리의 주장을 담은 평범한 자료를 언론에 돌렸다면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도 이익을 숨기는 대기업들을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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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스페인 경제 ‘구원투수’로

    중국이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재정위기로 신음하는 스페인 경제에 구원투수로 나섰다. 이달 초 옆 나라 포르투갈이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스페인도 국가 부도 사태가 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는 모두 93억 유로(약 14조6600억 원)를 스페인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CIC의 한 고위관리는 “최근 투자 유치를 위해 중국을 방문한 호세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총투자금 가운데 CIC가 60억 유로를 투자하고 나머지는 중국의 민간 투자자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은 침체에 빠진 스페인 경제가 부활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전문가들은 스페인의 저축은행들이 자국 부동산 시장 거품의 붕괴로 부실 채권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며 구제금융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스페인 국책은행은 저축은행업계의 구조조정 자금으로 모두 150억 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만약 중국의 이번 투자가 실현되면 그중 절반 이상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이에 앞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도 “중국이 스페인 국채를 더 매입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며 유로권 경제 회생 가능성에 힘을 실어줬다. 원 총리는 12일 베이징을 방문한 사파테로 총리를 만나 “중국은 유럽 금융시장에 책임 있는 장기 투자자로 남을 것”이라며 “유럽이 안정적인 경제 사회 발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중국은 스페인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화답했다. 스페인은 “포르투갈이 유럽에서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마지막 나라가 될 것”이라며 스스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혀 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최근 흔들리는 유로존 경제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다”며 “유럽은 중국의 주요 수출 시장으로 중국도 이 지역의 경제안정화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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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전 상처 덧날라… 코트디부아르 불안한 미래

    4개월 이상 이어진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 사태가 11일 로랑 그바그보 전 대통령의 체포로 일단 막을 내렸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남북 갈등과 내전의 상처가 깊어 “끝이 아니다”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내전을 벌였던 양측은 12일에도 경제수도 아비장에서 중화기를 동원한 격렬한 전투를 계속했다. 코트디부아르의 미래를 Q&A로 알아본다. Q. 10년 내전의 배경은…. A. 그바그보는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대통령이 됐다. 그는 민주화를 외치며 40년간 이어진 일당 독재를 종식한 정치영웅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국가의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바그보의 당선은 그 후 10년이나 이어진 ‘핏빛 내전’의 서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코트디부아르는 남북 간에 고질적인 지역 종교 민족 간 차이가 심했다. 북쪽에는 인접국인 부르키나파소 등에서 건너온 외국인이 많이 살았으며 이들은 남쪽 사람들로부터 정치, 경제적인 차별을 당해왔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알라산 우아타라 대통령(당선자)도 외국(부르키나파소) 출신이라는 이유로 2000년 대선 출마를 거부당한 바 있다. 그바그보는 남쪽을, 우아타라는 북쪽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여기에 북쪽은 이슬람교, 남쪽은 프랑스 지배의 영향에 따른 기독교가 각각 주류를 이뤄 종교 갈등도 심했다. 이 같은 남북 갈등은 2000년 그바그보가 집권한 후 북쪽 사람들에 대한 차별정책을 더욱 심하게 펴면서 급기야 2002년 내전으로까지 번졌다. 이후 내전은 수차례 휴전과 재발을 거치며 만성화됐다. Q. ‘민주혁명’인가, 내전인가. A. 그바그보는 선거에서 패했음에도 권력이양을 거부하다가 체포됐기 때문에 서방의 이번 개입은 아프리카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내전 과정에서 그바그보 측뿐 아니라 우아타라 측도 상대방에 대한 처참한 살육과 보복을 일삼아 과연 이번 일을 ‘민주혁명’으로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국제인권단체는 국제사회에서 정당성을 부여받았던 우아타라 측 부대가 그바그보를 지지하는 민간인 수백 명을 살해, 성폭행했다는 폭로를 했었다. 우아타라 주도 정부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전 세계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코트디부아르의 민주화의 진전이라는 점에서 ‘초콜릿 혁명’이라 부를 만하지만 내전의 그늘도 그만큼 큰 것이다. Q. 남은 과제는…. A. 코트디부아르는 내전 발발 이전만 해도 ‘아프리카의 기적’, ‘서아프리카의 남아공’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주목을 끌었다. 코코아는 물론 원유 커피 고무 등도 풍부해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망한 투자처로 손꼽혔다. 특히 이웃나라인 나이지리아 가나 라이베리아 등이 쿠데타와 내전으로 고통 받는 동안 1960년 독립 이후 친(親)프랑스 정권하에서 상대적으로 긴 평화 시대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후 10년간의 내전이 이 모든 이점을 앗아가고 경제를 ‘올스톱’시켰다. 우아타라 정부가 피폐해진 경제를 재건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심각한 민심 이반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긴 내전을 치르는 동안 쌓인 지역, 부족 간 갈등을 치유하면서 국가화합을 도모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Q. 국제 사회 반응은…. A. 우아타라 측을 지지해온 국제사회는 사태가 종료된 것에 대해 환영의사를 밝히면서도 내전이 가져올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의 승리”라고 말했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 외교부도 “코트디부아르가 이제 진정한 민주화 기회를 얻게 됐다”고 논평했다. 특히 이번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다시 확인한 계기가 됐다. 다만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선 “서방이 개별 국가 문제에 개입해 한쪽 편만 들면서 중립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하고 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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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AE도 ‘재스민’ 불안?

    중동 민주화 혁명의 흐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인권운동가들이 잇따라 체포되고 있다. 10일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등에 따르면 8일 보안요원들이 두바이에 있는 인권운동가 아흐메드 만수르의 자택에 들어가 그를 연행하고 서적과 컴퓨터 등을 압수했다. HRW는 “경찰이 연행 이유나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체포해 갔다”며 “UAE 내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인사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UAE 당국은 9일에도 인권운동가 파하드 살렘 알셰히를 아즈만 지역에서 체포했다. 알셰히는 자유선거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온라인 모임에 참가해 왔다. 토후국 7개로 구성된 UAE는 전체 인구의 80%가 외국인인 데다 막대한 오일머니와 해외투자 유치로 경제성장을 이룩해 그동안 조직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지 않았다. 당국의 이번 조치는 다른 중동 국가의 영향을 받아 온라인 등을 중심으로 정치개혁 요구가 번지는 조짐을 보이자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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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다피 ‘AU 휴전 중재안’ 수용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반카다피군과의 휴전과 대화를 골자로 한 아프리카연합(AU)의 협상 중재안을 수용했다. 그러나 반군 측은 카다피와 가족의 즉각 퇴진이 없으면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AU 중재단 대표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한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10일 “트리폴리에서 카다피 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눴고 그가 우리의 로드맵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AU의 중재안은 △즉각적인 휴전 △인도주의적 구호 확대 △리비아 내 외국인 보호 △카다피 측과 반군의 대화 등이 주요 내용. 주마 대통령은 “이와 함께 우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공습을 끝낼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AU 중재단은 이번 면담에서 카다피 원수의 퇴진 문제도 논의됐다고 전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중재단은 이 협상안을 들고 반군과 만나기 위해 11일 벵가지에 도착했다. 반군은 카다피 일가의 퇴진이 전제돼야 대화에 응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11일 벵가지 시내에는 수백 명이 모여 “카다피 퇴진 없이 평화는 없다”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AU의 중립성도 의문시되고 있다. AP통신은 “카다피는 2년 전 AU 의장을 맡은 적이 있으며 그동안 오일머니를 이용해 이 조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전했다. AU는 최근 “리비아 사태는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외세의 개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AU는 아프리카 대륙의 통합과 평화를 목표로 2002년 발족됐으며 53개국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한편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11일 “군사적 해법만으로는 리비아 사태를 풀 수 없다”며 “나토는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한 모든 국제사회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나토군은 10일 미스라타와 아즈다비야 지역을 폭격해 모두 25대의 정부군 탱크를 파괴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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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린 大權 패밀리”

    중남미에서 전현직 대통령의 자녀와 부인이 ‘대권의 꿈’을 키우고 있다. 10일 실시된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는 오후 11시(한국 시간) 현재 좌파 진영의 오얀타 우말라(47)의 뒤를 이어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 국회의원(36)이 2, 3위를 다투고 있어 주목된다. 후지모리 의원이 2위를 하면 6월 5일 결선투표에 나간다. 1994년 아버지가 부인과 별거 선언을 하면서 19세에 사상 최연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후지모리 의원은 2006년 총선에서 전국 최다 득표 기록을 세우며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의 인기는 아버지가 이뤘던 경제발전에 대한 국민의 향수가 가장 큰 요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현직 대통령이자 전 대통령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에 맞서 라울 알폰신 전 대통령(1983∼1989년 집권)의 아들인 리카르도 알폰신 연방 하원의원이 10월 선거에서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의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2003∼2007년 집권)는 2000년대 아르헨티나 정치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치인. 지난해 10월 말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사망한 뒤 아내인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라울 알폰신 전 대통령은 1983년 군사정권 종식 이후 첫 대선에서 승리하며 집권해 민주주의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과테말라에서는 대통령 가족의 차기 대선 출마를 금지한 헌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 이혼을 준비해온 알바로 콜롬 과테말라 대통령의 부인 산드라 토레스 여사가 8일 법원에서 이혼을 공식 허가받았다. 토레스 여사는 현지 여론조사에서 11% 안팎으로 지지율은 높지 않은 편이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 20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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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스민 혁명… 민주화로 가는 길

    지금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예멘의 반정부 시위는 사실 한 여성에 대한 석방 요구 시위에서 시작됐다. 타와쿨 카르만 씨(32). 세 아이의 엄마인 그는 3, 4년 전부터 정치개혁과 여권 신장을 위해 싸워온 시민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올 1월 말 카르만 씨가 불법시위 조직 혐의로 체포되자 학생들과 인권단체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카르만 씨는 석방된 뒤 지금까지 석 달째 예멘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일각에선 그를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멘의 여성 차별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지난해 유엔이 조사한 세계 성(性)불평등 지수에서 조사대상 138개국 중 138위다. 교육기회가 제공되지 않아 여성의 문맹률도 60%에 이른다. 그런 여권의 불모지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이슬람 남성 권력의 정점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 ○ 부르카 쓴 시위대 시위 초기만 해도 예멘 시위대에서 여성들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위 중심지인 수도 사나 ‘변화의 광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시위대 중 여성은 기껏해야 10명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성의 수는 급격히 늘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기 여동생과 친척, 친구들을 광장에 데리고 나왔다. 눈만 내놓는 부르카를 비롯해 히잡 등 전통의상 차림이 상당수다. 예멘의 여성 언론인이자 블로거인 아프라 나세르 씨(25)는 미들이스트온라인 기고에서 “요즘은 여성들이 광장에 가면 VIP처럼 존중과 대우를 받는다”며 “보통 예멘에선 집 밖에 나가면 쉽게 성희롱의 대상이 되지만 이제 광장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시위 형태도 과감해졌다. 단순히 행진에 참가하는 것을 넘어 광장에서 밤샘 노숙시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에서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특히 지금까지 100여 명이 숨지는 등 정부의 시위 진압이 강경해지는 와중에도 여성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 두 달째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여성 가멜라 씨는 “우리는 돈을 기부하거나 음식, 옷을 시위대에 제공한다”며 “심지어 진압경찰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들에게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독재 타도에서 여성 해방으로 여성의 시위 참여가 늘어나면서 예멘의 반정부 시위는 단순한 독재에 대한 저항에서, 남성우월주의로 변질된 기존 이슬람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성격이 확대되고 있다. 본래 이슬람 교리는 재산권을 비롯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했다. 부르카나 히잡 등도 꾸란(코란)에서 강제하는 복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꾸란에 대한 해석이 남성의 전유물이 되면서 현재 아랍 여성들의 가혹한 현실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여성 시민운동가인 아말 하자르 씨는 이집트 신문인 알마스리 알야움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여성들은 정권이 강요한 새장 속에 갇혀 무지(無知)한 채 살아왔다”며 “정권은 원래 순수했던 이슬람의 본질을 나쁜 방식으로 악용해 왔고 결과적으로 극단주의가 판을 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 201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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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다피, 또 오바마에 ‘하소연 편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공습을 중단해 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카다피는 평소 오바마 대통령을 ‘나의 친구’, ‘나의 아들’, ‘나의 사랑’이라고 칭하면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해 왔다. 지난달 19일에도 편지를 보내 “양국이 전쟁을 하더라도 당신은 내 아들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카다피는 5일 자신을 ‘혁명지도자’라고 소개하면서 ‘나의 아들, 미국 오바마 대통령 각하’를 수신인으로 한 3쪽짜리 영문 편지를 보냈다. 카다피는 “나토는 개발도상국 국민을 상대로 부당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세계 평화와 양국 국민의 우의를 위해, 또 대(對)테러 안보협력을 위해, 나토가 리비아에서 손을 떼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당신의 행동과 언사로 우리가 비록 아픔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항상 우리의 아들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해 계속 미국 대통령으로 남아 있길 기원한다”고도 덧붙였다. 편지에는 비문과 철자 오류가 많은 데다 특유의 장황하고 과장된 표현이 다수 섞여 있어 카다피가 직접 썼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백악관 제이 카니 대변인은 “카다피의 편지를 받았다”고 확인하면서도 “우리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를 판단할 것”이라며 공습 중단 요청을 일축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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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렌 벡의 독설, 결국 제 발등 찍다

    잇단 설화로 논란에 휘말려온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논객 글렌 벡(47·사진)이 결국 자신이 진행하던 시사 프로그램에서 물러나게 됐다. 폭스뉴스는 6일 “벡과 폭스뉴스는 앞으로 다른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할 것”이라며 “벡은 올해 말까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벡은 2009년 초부터 폭스뉴스 채널의 오후 5시 프로그램 ‘글렌 벡 쇼’를 맡아 왔다. 뉴스형식의 시사토크쇼인 이 프로그램에서 벡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진보진영을 겨냥한 거친 평론으로 단숨에 200만 명을 웃도는 고정 팬을 확보했다. 그 덕분에 폭스뉴스의 동시간대 시청률은 두 배로 치솟았고, 벡은 ‘오바마 저격수’로 불리며 순식간에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보수진영 인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벡은 지나친 독설과 음모론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을 “뿌리 깊은 백인 혐오가 있는 인종주의자”라고 비방하는가 하면 동일본 대지진을 “신이 진노한 결과”라고 말해 여론의 비난을 샀다. 독설에 지친 시청자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글렌 벡 쇼’의 평균 시청자 수는 2010년 초 270만 명에서 올해 20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또 지금까지 400곳이 넘는 광고주가 자기 기업 광고를 그의 프로그램에 내보내지 말라고 폭스뉴스에 요청했다. 벡의 프로그램으로 온건 보수층 사이에서 공화당의 이미지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이 폭스뉴스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추정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초에는 오바마에 대한 그의 독설이 먹혀들었지만 경제상황이 나아진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분석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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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 코트디부아르 내전 종결 초읽기

    유엔과 프랑스가 코트디부아르의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군사작전에 나서면서 그의 퇴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유엔으로선 리비아에 이어 동시에 또 하나의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국제사회에서 대통령 당선자로 인정받는 알라산 와타라 측 군 병력은 5일 그바그보 대통령의 아비장 관저를 장악했다. 그바그보 대통령은 일부 인사들과 함께 관저의 지하벙커로 대피한 상태다. 한국 외무차관을 지낸 최영진 유엔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는 “전쟁은 끝났으며 그바그보 대통령이 항복선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다. 앞서 4일 유엔 평화유지군과 프랑스군은 헬기를 동원해 대통령 관저와 대통령궁을 공격하고 아비장에 있는 그바그보 진영의 아쿠에도 군기지에도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닉 번백 유엔 평화유지군 대변인은 “그바그보군이 민간인에게 중화기를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쿠에도 군기지를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군사작전에는 지난달 리비아에 대한 연합군의 공격을 주도한 프랑스가 적극 참여했다. 코트디부아르에는 프랑스군 15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선 결과 발표 이후 4개월 넘게 혼란이 이어지는 동안 유엔 평화유지군이 그바그보군과 소규모 교전을 벌이기는 했지만 유엔 평화유지군과 프랑스군이 대통령궁 등을 전면적으로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30일 민간인을 살상하는 그바그보 측의 중화기 사용을 막기 위해 코트디부아르 주둔 1만4000명의 평화유지군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제재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와타라 측이 유엔과 프랑스군의 군사작전에 맞춰 아비장 공격을 이어가자 그바그보 측은 “유엔과 프랑스군의 공격은 명백한 불법이며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반발했으나 결국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제라르 롱게 프랑스 국방장관은 5일 “향후 몇 시간 내에 모든 사태가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지난해 대선에서 와타라 전 총리가 승리했지만 그바그보 대통령이 부정선거라고 불복하면서 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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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또 금리인상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이 2월에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런민은행은 5일 금융기관의 예금과 대출 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6일부터 1년 만기 예금금리는 3.25%, 대출금리는 6.31%로 각각 상향 조정된다. 중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자 금리인상을 단행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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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다피, 그리스에 정전협정 중재 ‘SOS’

    압둘 아티 알오베이디 리비아 외교장관 직무대행이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특사 자격으로 그리스를 방문해 “전쟁 종식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알오베이디 특사는 3일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와 만나 (반카다피군과의) 정전협정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해 알자지라 방송은 “그동안 양국 간의 친밀한 외교관계를 감안했을 때 카다피가 그리스에 원유를 싼값에 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디미트리스 드루트사스 그리스 외교장관은 회동 직후 성명에서 “리비아 정부가 외교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 같았다”며 “그리스는 리비아에 유엔 결의안의 이행과 민간인에 대한 폭력 종식, 즉각적인 정전 등 국제사회의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동은 리비아 정부의 제의로 이뤄졌다. 알자지라는 “그리스는 현재 재정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값싼 기름 같은 인센티브가 잘 먹혀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국은 이날 회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카다피의 출구 전략 등이 논의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알자지라는 덧붙였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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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명객 쿠사를 어쩌나…” 영국의 딜레마

    지난달 30일 영국으로 망명한 무사 쿠사 리비아 외교장관의 신병 처리를 놓고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는 1988년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미국 팬암기를 폭파시켜 270명을 숨지게 한 로커비 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알려져 있다. 희생자 유족들은 그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30년 최측근이었던 그의 망명은 카다피 정권의 붕괴를 바라는 서방국가들로서는 상당한 선전 가치를 지녔다. 범죄자로 기소하자니 처벌을 두려워하는 카다피 측근의 또 다른 망명이 무산될 수 있고, 사면하자니 유가족의 반발은 물론이고 범죄자 응징이라는 정의 실현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을 처지다. 원칙과 실리 사이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1일 영국 언론에 따르면 서방 정보기관들이 쿠사 전 장관의 망명을 조건으로 그의 사면을 약속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로커비 사건의 유가족들이 분노와 좌절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스테파니 번스타인 씨는 “쿠사 전 장관이 풀려날까봐 걱정스럽다”고 우려를 표했고, 유족 대표인 프랭크 더건 씨도 “쿠사는 이 사건의 증인이 아닌 비행기를 떨어뜨린 범죄자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커비 사건의 유족들은 2009년 사건의 범인 압델 바세트 알메그라히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풀려났을 때도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종신형으로 복역 중이던 알메그라히는 암으로 3개월밖에 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아 온정적 차원에서 석방됐지만 지금도 리비아에 살아있다.여론이 악화되자 영국 정부는 “어떤 이면 합의도 없었다”며 파문 확산을 막았다. 윌리엄 헤이그 외교장관은 “영국은 쿠사 전 장관에게 기소 면책특권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검찰도 그를 상대로 로커비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영국 정부와 쿠사 전 장관의 이면 거래가 실제 있었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나면서 영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정보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영국 정보기관이 그의 망명을 지원했고 쿠사 전 장관의 앞날을 돌봐주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만약 그가 영국에서 처벌을 받는다면 카다피 이너서클의 다른 측근들이 망명을 주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딜레마”라고 분석했다. 한편 리비아의 반카다피 세력은 쿠사 전 장관은 범죄혐의로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스타파 게리아니 반군 대변인은 “쿠사 전 장관은 살인, 고문 등으로 자기 손에 많은 피를 묻힌 인물이라 반드시 법정에 서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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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여왕처럼 남고 싶다”… 카다피 ‘2선 퇴진 - 4남이 세습’ 협상안 제안

    서방의 잇단 공습으로 궁지에 몰린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자신은 영국 여왕처럼 상징적인 지도자로 물러서고 대통령에 자기 아들을 앉힌다는 협상안을 들고 나왔다고 아랍 언론들이 보도했다. 아랍권 신문 아샤크알아우사트는 1일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카다피가 자신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처럼 명목상의 지도자로 남고 4남 무타심을 대통령으로 임명하며 반카다피군 지도자들도 정부에 참여하는 협상안을 서방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카다피는 원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에게 정권을 넘기는 협상안을 제안했지만 반군의 반대로 이를 철회한 뒤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라며 “사이프의 측근인 무함마드 이스마일이 비밀특사로 최근 협상을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최근 “카다피가 무타심에게 과도정부 수반직을 맡기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외교부 소식통은 카다피 아들 쪽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추 대상에서 아버지를 빼주는 내용의 출구전략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반군 측은 “카다피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 물러나야 한다”며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있다. 반군 대변인은 “카다피는 아직도 자기가 권력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며 “국민들은 이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그가 존재할 것이란 상상은 아예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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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 독재’ 판도라 상자 열린다

    《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오른팔’로 불리며 리비아의 각종 해외공작과 테러활동을 지휘해온 무사 쿠사 외교장관(61·사진)이 카다피 원수를 등지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의 망명은 카다피 정권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1988년 미국 팬암기 폭파 등 카다피 정권이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테러사건들의 실체가 그의 입을 통해 밝혀질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 카다피 최측근이지만 서방과도 친해 영국 외교부는 3월 30일 “쿠사 장관이 튀니지를 거쳐 런던 서남부 판버러 공항에 도착했다”며 “그는 장관직을 사임한다면서 본인의 자유 의지로 영국에 왔다”고 밝혔다. 리비아에서 장관급이 카다피 정권을 떠난 것은 2월 21일 압둘 파타흐 유네스 전 내무장관과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이 반카다피군에 합류한 지 한 달여 만의 일이다. 쿠사 장관은 현재 영국 정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쿠사 장관은 지난 30여 년간 카다피 원수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며 리비아 정권의 각종 해외공작에 직간접으로 간여해 왔다. 1978년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사회학 학사학위를 받은 그는 주영국 대사 등을 거쳐 1994년부터 15년간 리비아 정보기관 수장을 지냈고 외교장관에는 2009년 발탁됐다. 쿠사 장관은 1988년 270명의 사망자를 낸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의 팬암기 폭파사건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사건의 범인 압델 바세트 알리 알메그라히의 2009년 리비아 송환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 영국대사 시절에는 “영국 내 반체제 리비아인들을 숙청하겠다”는 언론 인터뷰를 한 뒤 영국에서 쫓겨났다. 지난달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카다피 원수의 퇴진을 촉구했을 때는 “어린애처럼 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런 최측근 쿠사 장관의 심경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카다피 원수가 전투기를 동원해 유혈 진압에 나서면서부터일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행금지구역 결의안 직후 쿠사 장관의 태도가 달라졌다”며 “반군과의 휴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리비아의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할 때 그의 손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카다피 원수 아들들과의 불화설도 망명 원인으로 꼽고 있다. 사실 쿠사 장관은 언제든지 카다피 원수와 결별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지목돼 왔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적이 있고 영어에도 능통해 서방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리비아와 서방 간의 대화를 주도했고 2003년에는 카다피 원수가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측근에게도 카다피와 결별 촉구 쿠사 장관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다국적군은 카다피 정권의 내부정보 획득과 반군 사기 진작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기대하고 있다. 또 향후 카다피 원수가 전범으로 국제재판을 받게 될 때 그의 범죄행위를 입증할 유력한 증인도 얻게 됐다. 정권의 핵심 인사가 순식간에 정권의 비리를 폭로할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로 바뀐 셈이다. 더 큰 수확은 다른 측근들의 이탈을 부추겨 카다피 정권의 자멸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들은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이 최근 쿠사 장관과 잇달아 접촉을 가져왔다”고 전하며 서방국가들이 그의 망명을 위해 꾸준히 설득 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추정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쿠사 장관에게 어떠한 면책 제안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무사 이브라힘 리비아 정부 대변인은 처음엔 “외교 임무를 띠고 런던에 간 것”이라며 망명이 아니라고 주장하다가 31일 “(현재 상황은) 나라 전체를 위한 투쟁이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높은 서열이든 개개인이나 관료들에게 (정권 유지를) 의존하지 않는다”며 망명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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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벨기에, 세계 최장 290일째 무정부 상태

    심각한 지역갈등을 빚고 있는 벨기에가 ‘세계 최장 기간 무정부 상태’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벨기에는 지난해 6월 13일 총선거를 치른 이후 지금까지 정당 간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30일을 기준으로 290일째 무정부 상태를 이어갔다. 이는 유럽 최장 기록이었던 1977년 네덜란드의 208일은 물론이고 종전 세계기록이었던 2009년 이라크의 289일을 뛰어넘는 것이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권인 북부 플랑드르 지역과 프랑스어권인 남부 왈롱 지역 간의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면서 연정 구성에 난항을 겪어 왔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플랑드르 지역 정당인 ‘새 플레미시 연대(N-VA)’가 27석을 차지하며 제1당이 됐지만 N-VA가 북부의 분리 독립을 주창하고 나오면서 남부 지역 정당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벨기에는 언어권별로 연방하원(150석) 의석이 배분되는 구조에 따라 보통 5∼7개 정당이 연정을 구성해야 정부가 수립된다. 지식산업이 발전한 플랑드르 지역은 농·축산업 위주의 왈롱 지역보다 경제가 발전해 더 많은 자치권을 원하고 있다. 정부가 없는 상태가 계속됨에 따라 벨기에 시민들은 올 1월 3만여 명이 참가해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지난달에도 무능한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대규모 시위를 여러 차례 벌였다. 다만, 이브 르테름 임시총리의 ‘관리 내각’이 최소한의 국정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무정부 상태임에도 벨기에 국민이 느끼는 불편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공권력 부재로 인한 혼돈과 약탈, 무질서를 의미하는 통상적인 무정부 상태와는 다른 것이다. 또 독특한 정치구조 때문에 이전에도 100일 이상 정부가 조직되지 않은 적이 수차례 있었기 때문에 국민이 어느 정도 익숙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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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다피 또 물타기 폭로?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궁지에 몰린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군사 개입에 참여한 국제사회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향응을 받았다며 비방전에 나서고 있다. 29일 아랍 언론들에 따르면 카다피 측은 “리비아는 암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사진)에게 4만2000유로(약 6600만 원) 상당의 자동차와 상당한 현금을 뇌물로 줬다”며 “무사 사무총장은 레바논 사태를 중재하는 대가로 사드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한테서도 전용 제트기를 제공받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랍연맹은 최근 유엔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구하는 등 카다피 정권에 강경 대응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무사 사무총장은 “(문제가 된) 자동차의 가격은 2만4000유로였고 내 이름이 아닌 아랍연맹 이름으로 받았다”며 “내가 개인적으로 다른 뇌물을 받은 게 있다면 그것은 카다피가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맞섰다. 그는 “레바논 총리의 전용기는 한 번 이용했을 뿐이고 아랍국을 방문할 때 해당국이 관행적으로 빌려주는 것”이라며 “카다피가 나를 암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이달 중순에도 카다피 원수 측은 공습을 주도하는 프랑스를 겨냥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리비아에서 받은 대선자금을 반환해야 한다. 자금 전달을 입증할 자료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프랑스는 “차라리 자료를 폭로해 보라”며 이 주장을 공식 부인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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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 25만명 “원전반대” 시위

    일본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지구촌에 원전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26일 독일에서 25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원전 반대 시위가 열렸다. 이날 시위는 베를린 12만 명을 비롯해 함부르크와 쾰른, 뮌헨에서 각각 수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동시다발로 열렸다. 환경 및 종교단체 등이 주관한 이날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후쿠시마(福島) 사태는 원자력 발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벌였다. 과거 사회민주당 정부는 독일 내 17개 원전을 2021년까지 완전 폐쇄하기로 했지만 현재의 보수 연정은 원전 가동 기간을 평균 12년씩 연장하기로 정책을 수정한 상태다. 한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25일 조지아 주에 건설되는 2기의 원자로 건설계획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켰다. 이는 1979년 펜실베이니아 주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30여 년 만에 다시 추진되는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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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자베스 테일러 1932~2011]“그 눈동자 기억할게요” 美 애도 물결

    “리즈여, 안녕히….”23일 세상을 떠난 ‘세기의 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추모하는 물결이 넘치고 있다. 평소 친분이 깊은 정치권이나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은 성명서나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리즈(엘리자베스의 애칭)를 잃은 슬픔을 표하거나 명복을 빌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엘리자베스의 유산은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세계인들 사이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 남편이자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을 지낸 존 워너는 “마음과 영혼이 고전적 얼굴과 당당한 눈동자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여성으로 그녀를 기억할 것”이라며 그리워했다. 미국 에이즈연구재단은 성명을 내고 “(에이즈 퇴치 운동을 벌인) 리즈는 수백만 명의 삶을 연장한 기념비적 유산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동성애 단체들도 생전에 에이즈 퇴치운동에 앞장선 리즈에 대한 추모 열기로 뜨겁다. 리즈는 친했던 배우 록 허드슨이 1985년 에이즈로 사망하자 에이즈 퇴치 운동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99년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에이즈퇴치운동단체(Elizabeth Taylor Aids Foundation·ETAF)는 지금까지 1억 달러가 넘는 모금을 했다. 리즈의 묘소가 어디가 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리즈와 함께 동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메릴린 먼로와 같은 묘지에 묻힐 가능성이 있다. 6세 연상인 먼로는 1950, 60년대 리즈와 함께 할리우드 영화계의 대표 스타로 활약하다 1962년 로스앤젤레스 웨스트우드 빌리지 메모리얼 파크에 묻혔다. 웨스트우드 파크는 미술품 거래상이었던 리즈의 아버지 프랜시스 테일러와 연극배우였던 어머니 세라 테일러가 묻혀 있는 것을 비롯해 가수 로이 오비슨, 영화배우 내털리 우드와 파라 포셋 등 미국 문화계 인사가 다수 묻혀 있다. 리즈가 이곳에 묻힌다면 부모 옆자리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던 전 남편 배우 리처드 버튼의 고향에 묻힐 가능성도 있다. BBC 방송은 “리즈와 버튼이 결혼할 때 죽으면 함께 묻히자고 약속했었다”며 “버튼의 고향인 영국 웨일스 남부에 리즈의 묘지가 마련될 수 있다. 버튼의 유가족도 리즈의 의사가 그렇다면 이를 존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리즈의 장례식은 이번 주말경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201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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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비아 전쟁]반카다피 臨政은 ‘해외파 정권’

    리비아 반(反)카다피 세력이 총리와 재무장관 등 요직을 선임함에 따라 임시정부의 큰 틀이 드러나고 있다. 임시정부의 수뇌부에 임명된 인사들은 서구 문물에 밝은 해외 유학파가 많아 서방 세계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카다피군 국가위원회는 23일 임시정부 총리로 마흐무드 지브릴 씨(59)를, 재무장관 격인 재무위원장에 현직 미국 대학교수인 알리 타르후니 씨(60)를 각각 임명했다. 지브릴 총리는 국제사회에서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야권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전략계획 및 의사결정 분야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이 대학에서 수년간 강의했다. 리더십 양성 관련 업무에도 밝은 그는 무아마르 카다피 집권 시기에 국가계획위원회 대표와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서에 따르면 미국 외교관들은 지브릴 총리를 “미국적 시각을 가진 진지한 협상 상대”라고 평가했다. 타르후니 재무위원장은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워싱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카다피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뒤 1973년 미국으로 도피한 그는 이후 리비아 정부에 의해 시민권이 박탈되고 1978년에는 결석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반정부 시위대가 벵가지를 장악한 지 며칠 뒤 리비아에 돌아왔다. 서방에선 그동안 반카다피군 세력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아 지원에 선뜻 나서지 못했지만 임시정부의 핵심 요직을 서구 유학파가 차지함에 따라 지지 입장을 굳힐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위원회의 유럽 특사인 만수르 사이프 알나스르는 “리비아가 해방되면 이슬람 성직자에 의해 통치받지 않는 민주국가를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201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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