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세계 최장 290일째 무정부 상태

  • 동아일보

지역갈등 커 연정 구성못해… 국민들은 큰 불편 못느껴

심각한 지역갈등을 빚고 있는 벨기에가 ‘세계 최장 기간 무정부 상태’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벨기에는 지난해 6월 13일 총선거를 치른 이후 지금까지 정당 간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30일을 기준으로 290일째 무정부 상태를 이어갔다. 이는 유럽 최장 기록이었던 1977년 네덜란드의 208일은 물론이고 종전 세계기록이었던 2009년 이라크의 289일을 뛰어넘는 것이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권인 북부 플랑드르 지역과 프랑스어권인 남부 왈롱 지역 간의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면서 연정 구성에 난항을 겪어 왔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플랑드르 지역 정당인 ‘새 플레미시 연대(N-VA)’가 27석을 차지하며 제1당이 됐지만 N-VA가 북부의 분리 독립을 주창하고 나오면서 남부 지역 정당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벨기에는 언어권별로 연방하원(150석) 의석이 배분되는 구조에 따라 보통 5∼7개 정당이 연정을 구성해야 정부가 수립된다. 지식산업이 발전한 플랑드르 지역은 농·축산업 위주의 왈롱 지역보다 경제가 발전해 더 많은 자치권을 원하고 있다.

정부가 없는 상태가 계속됨에 따라 벨기에 시민들은 올 1월 3만여 명이 참가해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지난달에도 무능한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대규모 시위를 여러 차례 벌였다.

다만, 이브 르테름 임시총리의 ‘관리 내각’이 최소한의 국정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무정부 상태임에도 벨기에 국민이 느끼는 불편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공권력 부재로 인한 혼돈과 약탈, 무질서를 의미하는 통상적인 무정부 상태와는 다른 것이다. 또 독특한 정치구조 때문에 이전에도 100일 이상 정부가 조직되지 않은 적이 수차례 있었기 때문에 국민이 어느 정도 익숙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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