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객 쿠사를 어쩌나…” 영국의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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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영국으로 망명한 무사 쿠사 리비아 외교장관의 신병 처리를 놓고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는 1988년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미국 팬암기를 폭파시켜 270명을 숨지게 한 로커비 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알려져 있다. 희생자 유족들은 그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30년 최측근이었던 그의 망명은 카다피 정권의 붕괴를 바라는 서방국가들로서는 상당한 선전 가치를 지녔다. 범죄자로 기소하자니 처벌을 두려워하는 카다피 측근의 또 다른 망명이 무산될 수 있고, 사면하자니 유가족의 반발은 물론이고 범죄자 응징이라는 정의 실현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을 처지다. 원칙과 실리 사이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1일 영국 언론에 따르면 서방 정보기관들이 쿠사 전 장관의 망명을 조건으로 그의 사면을 약속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로커비 사건의 유가족들이 분노와 좌절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스테파니 번스타인 씨는 “쿠사 전 장관이 풀려날까봐 걱정스럽다”고 우려를 표했고, 유족 대표인 프랭크 더건 씨도 “쿠사는 이 사건의 증인이 아닌 비행기를 떨어뜨린 범죄자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커비 사건의 유족들은 2009년 사건의 범인 압델 바세트 알메그라히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풀려났을 때도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종신형으로 복역 중이던 알메그라히는 암으로 3개월밖에 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아 온정적 차원에서 석방됐지만 지금도 리비아에 살아있다.

여론이 악화되자 영국 정부는 “어떤 이면 합의도 없었다”며 파문 확산을 막았다. 윌리엄 헤이그 외교장관은 “영국은 쿠사 전 장관에게 기소 면책특권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검찰도 그를 상대로 로커비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 정부와 쿠사 전 장관의 이면 거래가 실제 있었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나면서 영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정보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영국 정보기관이 그의 망명을 지원했고 쿠사 전 장관의 앞날을 돌봐주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만약 그가 영국에서 처벌을 받는다면 카다피 이너서클의 다른 측근들이 망명을 주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딜레마”라고 분석했다.

한편 리비아의 반카다피 세력은 쿠사 전 장관은 범죄혐의로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스타파 게리아니 반군 대변인은 “쿠사 전 장관은 살인, 고문 등으로 자기 손에 많은 피를 묻힌 인물이라 반드시 법정에 서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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