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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朴은 ‘양심적 보수’를 배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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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朴은 ‘양심적 보수’를 배신했다

황호택 고문 입력 2017-03-15 03:00수정 2017-03-1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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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신뢰 잃은 대통령 탄핵 기각됐으면 더 큰 혼란 왔을 것
새누리당 추천의 안창호 재판관 보충의견
“대통령 탄핵심판은 보수 진보의 이념문제 아니다”
무능과 불성실보다 거짓이 더 나쁘다
황호택 고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무능과 불성실보다도 빤한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한 행위다. 박 전 대통령은 “나도 최순실에게 속았다”고 말해 놓고 독일로 도피한 최 씨와 대포폰으로 두 달 동안 하루 두 통씩 모두 127차례 통화를 했다. 최 씨의 연설문 열람 및 수정과 관련해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해명했지만 정호성 비서관은 취임 후부터 지난해 4월경까지 최 씨에게 180건의 청와대 문서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 앞에서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는데 국민은 이 말을 박 전 대통령에게 되돌려 주고 싶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파면당하는 것 이상의 불명예와 더 무거운 처벌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해서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하자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계속 대다수 국민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주면서 거짓말로 사태를 호도하려 든다면 검찰이나 법원이 정상을 참작할 여지도 사라져버린다.

헌법재판관의 추천권자는 대통령, 대법원장, 여야(국회)로 다양하지만 법률가의 양심으로 팩트를 찾고 법률적 판단을 한다면 다른 결론이 나오기 어려웠던 사건이 바로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선임한 재판관들까지 전원 탄핵을 인용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대목은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이었다. 결정문 뒷부분에 들어간 보충의견에서 안 재판관은 ‘이 사건 탄핵심판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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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재판관은 2년가량 헌법연구관으로 헌재에 파견됐던 기간을 제외하면 검찰에서 평생을 보낸 법조인이다. 안 재판관은 새누리당 몫으로 국회에서 선출한 케이스다. 그의 이력에 비춰 이념적 성향이 보수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그가 보충의견을 굳이 낸 것은 탄핵 집회가 태극기와 촛불 세력으로 갈려 탄핵을 지지하면 좌파고, 탄핵에 반대하면 우파로 몰리는 사회 일각의 분위기가 잘못됐음을 지적하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헌재도 태극기와 촛불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타깃이 됐지만 불편한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도 도처에서 공격을 받았다. 일부 보수단체 인사들은 jtbc가 특종한 태블릿PC도 조작됐다고 공격했다. jtbc가 폐업할 작심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 과도한 흥미 위주의 언론 보도가 없지 않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하는 시간에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를 탐사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주요한 책무다.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을 설립하면서 재벌들로부터 강제출연을 받은 행위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현 세종연구소) 모금에서 배운 듯하다. 안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1987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권력 형성의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대통령의 권력 행사에서는 정경유착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상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최 씨가 미르·K스포츠를 주머닛돈처럼 주무른 운영 행태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시곗바늘을 5공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필자와 가까운 한 보수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잘했대서가 아니라 안보관이 불안한 좌파에 정권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태극기 집회에 나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9년 만에 다시 진보에 정권을 내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 도래한 데는 박 전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헌재 결정문에서 지적했듯이 박 전 대통령은 법치주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처럼 보수가 앞장서 지켜야 할 가치를 중대하게 훼손했다.

그렇다고 보수가 이번에 결딴나는 것처럼 절망할 필요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말기에 새누리당 후보 경선이 대통령 선거 본선같이 돼버리면서 안희정 씨가 “친노는 폐족”이라는 말을 했지만 지금 후보 지지율에서 1, 2위를 달리는 후보는 모두 부활한 친노 폐족들이다. 친박은 폐족이지만 국가안보와 시장경제, 자유민주적 가치를 신봉하는 양심적인 보수들은 패배자가 아니다. 설령 이번에 진보가 정권을 잡더라도 승리에 도취해 오만에 빠져든다면 5년 뒤, 10년 뒤에는 국민이 또 새로운 변화를 갈구할 것이다.
 
황호택 고문 hthwang@donga.com


#박근혜#최순실#안창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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